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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회사의 배신 : 사회안전망인가 , 영리추구 기업인가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6. 1. 21. 03:12

보험회사의 배신: 사회안전망인가, 영리추구 기업인가

보장축소라는 이름의 배신
DB손해보험이 최근 치아보험의 보장한도를 대폭 축소했다. 크라운은 5만원, 임플란트는 10만원으로 제한했다. 실제 치료비가 크라운의 경우 수십만원에서 백만원 이상, 임플란트는 백만원을 훌쩍 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보장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수준이다. 보험료는 꼬박꼬박 받아가면서, 정작 보험금 지급 단계에서는 손바닥만 한 금액만 내놓겠다는 것이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광고다. “지병이 있어도, 나이가 많아도 DB라면 됩니다”라며 문턱을 낮춘 듯한 홍보를 하면서, 실상은 보장내용을 대폭 축소해 실익을 거세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주식회사 보험회사의 민낯이다. 가입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은 화려하지만, 실제 보장은 최소화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는 전형적인 영리 추구 행태다.
담합을 방불케 하는 업계 관행
문제는 DB손보만이 아니다. 현대해상, 한화손보 등 주요 보험사들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일제히 크라운 한도를 2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한 회사의 일탈이 아니라 업계 전체의 구조적 문제라는 방증이다. 경쟁을 통해 소비자에게 더 나은 상품을 제공해야 할 시장 메커니즘이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보험사들끼리 ‘보장 축소 경쟁’을 벌이고 있는 꼴이다.
현장에서 마주한 참담한 현실
나는 최근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한 어머니의 자녀를 위한 치아보험을 설계했다. DB손보를 비롯한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검토하면서 참담함을 느꼈다. 크라운 5만원, 임플란트 10만원이라는 턱없는 한도를 제시하는 상품들 앞에서, 설계사로서 도대체 무엇을 권유해야 하나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라이나손해보험에서는 여전히 합리적인 조건의 상품을 유지하고 있었다. 레진 20만원, 인온레이 30만원, 크라운 40만원으로 보존치료 개수 제한 없이 보장하며, 임플란트와 브릿지는 50만원, 틀니는 100만원까지 보장하는 상품이었다. 결국 이 상품으로 가입을 진행했지만, 씁쓸함이 남았다.
왜 소비자들이 제대로 된 보장을 받기 위해 설계사가 이렇게 발품을 팔아가며 ‘아직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보험사를 찾아다녀야 하는가? 이것이 정상적인 보험 시장의 모습인가?
설계사의 딜레마
이런 상황에서 설계사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는가. 그들 역시 피해자다. 고객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상품을 권유하고 싶어도, 회사에서 정해놓은 수익성 중심의 상품만 팔아야 하는 현실에 갇혀 있다.
나처럼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할 수 있는 설계사는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한 회사 전속 설계사들은 어떤가? 그들은 회사가 보장을 대폭 축소한 상품을 들고 고객 앞에 서야 한다. “죄송합니다만, 크라운은 5만원까지만 보장됩니다”라고 말하며 고객의 실망스러운 표정을 마주해야 한다.
설계사와 소비자 모두 주식회사 보험회사라는 구조의 희생양이 되고 있는 셈이다.
왜 주식회사 보험은 문제인가
주식회사 보험회사의 1차 목표는 명백하다. 주주 이익 극대화다. 가입자 보호나 사회안전망 역할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다. 손해율이 올라가면 보장을 줄이고, 수익성이 낮은 상품은 판매를 중단하며, 보험금 지급은 최소화하려 한다. 이것이 영리 추구 기업으로서는 합리적 선택일지 몰라도, 국민의 건강과 노후를 책임져야 할 보험 본연의 역할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반면 상호회사 형태의 보험사는 가입자가 곧 주인이다. 이윤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대신 가입자에게 환원하고, 보장 확대에 재투자한다. 영리 추구가 아닌 상호부조라는 보험 본연의 가치에 더 충실할 수 있는 구조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의 태도는 무책임하기 짝이 없다. 보험사들의 일방적 보장 축소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치하고 있다. 주식회사 보험사의 영리 추구 행태가 사회문제로 불거지고 있음에도, 상호회사로의 전환 유도나 국가 수탁 보험회사 설립 같은 구조적 대안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보험은 단순한 금융상품이 아니다. 질병, 사고, 노후라는 인생의 위기 순간에 국민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이다. 그런데 현재의 주식회사 중심 보험 시장에서는 이 안전망이 수익성이라는 잣대 앞에서 너무나 쉽게 구멍이 뚫리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
이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할 때다. 보험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주주의 배당금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국민의 건강과 삶을 보호하기 위해서인가?
주식회사 보험사들의 상호회사 전환을 적극 유도하거나,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보험회사를 설립해 민간 보험 시장에 건전한 경쟁 압력을 가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보험이 영리 추구의 도구가 아닌, 진정한 사회안전망으로 기능하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정부와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더 이상 DB손보 같은 사례가 반복되지 않도록, 보험 산업의 구조적 개혁이 시급하다. 국민의 건강과 노후가 주주 배당의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설계사들이 ‘아직 양심 있는’ 보험사를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보험사가 국민을 위한 합리적 보장을 제공하는 시장. 그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