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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계의 주체사상 ,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6. 1. 11. 13:54

보험업계의 주체사상, 주인은 어디에 있는가

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

주체사상의 핵심 명제는 명확하다. “모든 것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인민대중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선언인가. 하지만 우리는 안다. 이 고상한 이념이 현실에서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인민의 이름으로 포장된 1인 독재 체제, 대중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자행되는 억압과 통제. 주체사상은 김씨 일가의 영구 집권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놀랍게도 한국의 보험업계에서 이와 놀라울 만큼 유사한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고객이 주인이라고? 웃기는 소리
보험회사들의 광고를 보라. “고객의 행복을 책임집니다”, “평생 든든한 동반자”, “당신의 미래를 지킵니다”. 마치 주체사상의 선전 문구처럼 그럴듯하다. 고객이 주인이고, 고객의 이익이 최우선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반복한다.
그런데 막상 보험금을 청구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약관상 해당 질병은 보장 범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고지의무 위반 사항이 발견되었습니다.”
“인과관계가 불분명하여 보상이 어렵습니다.”
수십 페이지에 달하는 약관의 미세한 문구, 일반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용어, 그리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한 온갖 논리적 체조. 고객이 주인이라더니, 정작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온갖 이유를 대며 문을 걸어 잠근다.
고난의 행군, 그리고 보험업계의 고난의 행군
1990년대 중반,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 시기가 있었다. 공식 통계조차 인정하기 어려운 수백만 명의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었다. 나무껍질을 벗겨 먹고, 풀뿌리를 캐먹으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아사 직전의 인민들이 거리를 헤맬 때, 김정일은 어떻게 지냈는가?
프랑스산 고급 와인을 마시고, 일본산 고급 생선회를 즐기며, 스위스 명품 시계를 수집했다. 인민의 고통 위에서 향락을 누렸다. “고난을 함께한다”는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였을 뿐, 진짜 고난은 철저히 인민의 몫이었다.
지금 한국의 보험업계는 어떤가?
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로 고통받는 가입자가 있다. 몇 달째 병원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평생 성실히 납부한 보험료, 그 돈으로 가족의 생계라도 지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보험사는 “정확한 병명이 약관과 미세하게 다릅니다”라며 차갑게 거절한다.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가장이 있다.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보험금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하지만 “기왕증과의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지급이 거부된다. 법정 싸움을 할 돈도, 기력도 남아있지 않다.
그렇게 부당하게 거부한 보험금, 가입자들에게 지급했어야 할 그 돈은 어디로 갔을까?
호의호식하는 자들
대형 보험사 CEO들의 연봉을 보라. 수십억 원을 호가한다. 주요 임원들의 성과급은 수억에서 수십억에 달한다. 무엇으로 이런 성과를 냈는가? 보험금을 아껴서다. 지급해야 할 돈을 최대한 안 주는 것으로 “손해율 개선”이라는 훌륭한 실적을 만들어냈다.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배당금은 또 어떤가? 수천억 원이 넘는다. 그 돈의 상당 부분은 투병 중인 가입자들이 받았어야 할 정당한 보험금이다. 병상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고통 위에서, 누군가는 골프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린다.
김정일이 인민의 아사 위에서 호의호식했듯, 보험회사의 경영진과 주주들은 가입자의 고통 위에서 배를 불린다. 구조는 정확히 같다. ‘인민을 위한다’, ‘고객을 위한다’는 구호만 요란할 뿐, 실제로는 철저히 자신들의 배만 채운다.
수익 극대화라는 진짜 주체
주체사상이 실제로는 김씨 일가의 권력 유지 도구인 것처럼, 보험업계의 “고객 중심주의”도 실은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보험회사의 손해율 관리는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고 있다. 보험금 심사팀은 사실상 ‘부지급 찾아내기’ 부서로 전락했다. 직원들은 보험금을 최대한 적게 지급할수록 높은 평가를 받는다. 고객의 아픔과 절박함은 안중에도 없다. 오직 손해율, 수익률, 주가, 배당금만이 중요할 뿐이다.
암 진단을 받고 막막한 환자에게 “정확한 진단명이 약관과 0.1% 다릅니다”라며 거절하는 게 정상인가? 교통사고로 고통받는 피해자에게 “기왕증이 있었으니 인과관계가 불분명합니다”라고 발뺌하는 게 고객을 위하는 일인가?
그렇게 거절된 보험금 1억이 누군가에게는 생사가 걸린 돈이지만, 보험사 CEO에게는 연봉 중 0.001%에 불과하다. 이게 정의로운 사회인가?
구조적 불평등의 고착화
더 심각한 건 이런 구조가 시스템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험 판매 시점에는 온갖 친절과 혜택을 약속하지만, 정작 보험금을 받아야 할 때는 고객이 홀로 거대한 기업 조직과 싸워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서민들은 부당한 거절에도 그냥 포기한다. 소송을 걸어봤자 시간과 비용만 낭비될 뿐이다. 보험회사는 이를 잘 안다. 그래서 더욱 대담하게 부지급 결정을 남발한다. 10건을 거절하면 그중 2~3건만 항의하고, 소송까지 가는 건 고작 1건. 이런 계산이 깔려 있다.
병상에 누운 가입자는 하루하루 생존을 고민하고, 임원회의실의 경영진은 분기 배당을 논의한다. 이 잔인한 대조가 매일 반복된다.
진짜 주인을 되찾으려면
주체사상이 본래의 의미를 되찾으려면 권력이 진정으로 인민에게 돌아가야 하듯, 보험업계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고객이 진짜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명확하다. 첫째, 약관의 전면적 단순화와 표준화. 보험 전문가도 헷갈리는 약관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둘째, 보험금 지급 거절 시 입증책임의 전환. 고객이 보장받을 권리가 없음을 보험사가 입증해야 한다. 셋째, 부당한 거절에 대한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고객을 우롱한 대가를 뼈저리게 치르게 해야 한다. 넷째, 경영진 보수를 보험금 지급률과 연동시켜라. 가입자를 고통에 방치하고 받는 억대 연봉은 부도덕하다.
맺으며
“모든 것의 주인은 고객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도 고객이다.”
보험회사들이 정말로 이 문구를 믿는다면, 지금 당장 행동을 바꿔야 한다. 그럴 의지가 없다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라. “우리의 주인은 주주이며, 우리가 결정하는 모든 것은 수익을 위한 것이다”라고.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 주민들이 아사할 때 김정일이 호의호식한 것을 우리는 야만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병상에서 신음하는 가입자들을 외면하고 억대 연봉을 챙기는 보험업계는 뭐라 불러야 하는가?
적어도 거짓된 구호로 국민을 기만하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보험업계의 주체사상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진정한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것인지. 선택은 이제 보험회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