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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 칼럼 ] 선택적 평등이라는 가장 비겁한 위선 : 진정한 존엄은 온실이 아니라 , 정정당당한 ‘ 손맛 ’ 의 승부에서 나온다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6. 10. 6. 04:56

[기획 칼럼] 선택적 평등이라는 가장 비겁한 위선: 진정한 존엄은 온실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손맛’의 승부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 인식 개선’과 ‘차별 금지’는 누구도 쉽게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인 도덕적 명제로 자리 잡았다. 장애인 단체들은 비장애인과 동등한 인격체로서 대우받기를 원하며, 동정의 시선이나 ‘능력이 부족할 것’이라는 편견을 거두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장애를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자격을 의심받는 것은 부당하다는 그들의 외침은 논리적으로 완벽하게 타당하다. 평등한 사회라면 마땅히 지향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이 특정 이권과 결부되는 순간, 논리는 기괴하게 비틀어지며 지독한 모순을 드러낸다. 세상 모든 영역에서는 "우리를 비장애인과 똑같이 능력 있는 존재로 대우하라"고 외치면서도, 특정 직업군(안마업)에 대해서만큼은 "우리는 약자이니 비장애인의 진입을 법으로 철저히 막아 독점권을 보장하라"고 태도를 돌변한다. 자신들에게 유리할 때는 ‘동등한 인격체와 실력자’를 표방하고, 불리할 때는 다시 ‘보호받아야 할 절대적 약자’의 방패 뒤로 숨는 이 기만적인 스탠스. 이것이 바로 평등을 뷔페처럼 취사선택하는 ‘선택적 평등’의 끔찍한 위선이다.
독점이라는 온실이 만들어낸 비대한 오만과 나태
모든 차별을 철폐하라면서 왜 유독 안마업 시장만큼은 비장애인에 대한 역차별과 진입 장벽을 법으로 강제하는가? 경쟁이 사라진 독점 시장의 끝은 필연적으로 나태와 서비스의 질적 하락이다. 다른 경쟁자가 시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발전해야 할 동력은 사라지고 소비자를 향한 오만함만이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최근 필자가 목격한 일부 안마원의 실태는 이러한 독점 생태계의 썩은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손님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쾌적한 베드는커녕 낡은 침대 딸랑 두 개를 놓아두고, 저주파 치료기나 족욕기, 찜질팩 같은 최소한의 인프라 투자조차 전무한 곳. 그러면서도 원장은 거드름을 피우며 “실력이 부족하다”느니, “아직 손님을 받을 수준이 아니다”라며 오직 자신만의 아집으로 실력을 운운한다.
착각하지 말라. 서비스업에서 진정한 ‘실력’은 시설 투자도 하지 않고 독점권에 기대어 앉아 있는 원장이 판가름하는 것이 아니다. 내 돈과 시간을 지불하고 침대에 눕는 ‘소비자’가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안마원이라면 넓은 공간에 쾌적한 침대를 다수 구비하고, 40분의 수기 안마와 20분의 찜질 등 체계화된 시스템을 통해 고객에게 완벽한 휴식을 제공해야 마땅하다. 시설 투자라는 기본적인 서비스 마인드조차 갖추지 못한 채 그저 법이 보장해 준 간판 하나에 의지하여 실력을 운운하는 것은, 정당한 경쟁을 회피하는 자들의 알량한 허세일 뿐이다.
진짜 실력자라면 법의 방패를 부수고 ‘손맛’으로 증명하라
장애인 인식 개선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비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능력 있는 전문가’로 우러러보게 만들고 싶다면, 해답은 너무나도 간단하다. 시위나 캠페인으로 인식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법이 만들어준 낡은 온실을 스스로 걷어차고 나와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하면 된다.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주장하듯, 그들이 시각의 결여 대신 발달된 고도의 촉각과 수십 년간 축적된 맹학교의 임상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면 무엇이 두려운가? 비장애인 안마사들과 동일한 시장에서 간판을 걸고, 소비자들의 냉혹한 평가 앞에 서면 될 일이다. 정말 실력이 압도적이라면 아무리 비장애인 안마사들이 화려한 인테리어로 치장하고 시장에 쏟아져 들어온다 한들, 소비자들은 결국 진짜 뼈와 근육의 피로를 풀어주는 시각장애인 안마사의 압도적인 ‘손맛’을 찾아 지갑을 열게 되어 있다.
"비장애인과 겨뤄도 우리가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다. 그러니 내 안마 베드에 누워 직접 그 손맛을 경험해 보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 이것이 진짜 자존심이고 진짜 평등이다. 반대로 "비장애인이 들어오면 우리는 생존할 수 없으니 법으로 막아달라"고 시위하는 것은, 은연중에 "우리의 실력으로는 비장애인과의 공정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패배주의를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다. 스스로의 능력을 그토록 하대하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차별 없는 시선으로 자신들을 바라봐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선택적 혜택을 버려야 진정한 존엄이 시작된다
권리와 평등은 내가 불리할 때만 빼드는 조커 카드가 아니다. 비장애인과 동등한 존재로서 차별 없는 대우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면, 그 동등한 잣대 위에서 벌어지는 냉혹한 시장의 경쟁 역시 피투성이가 되더라도 맨몸으로 받아내야 할 의무가 있다.
경영 능력이 부족해 최소한의 시설 투자조차 못 하는 자가, 정당한 경쟁을 펼칠 깡조차 없는 자가 원장이라는 완장을 차고 안마업을 독점하는 비정상적인 구조는 이제 깨어져야 한다. 진정한 장애인 인식 개선은 법이 억지로 쥐여준 독점적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특혜 없는 맨바닥에서 오직 자신의 두 손과 땀방울로 비장애인을 실력으로 압도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징징대며 법의 치맛자락에 숨는 위선적인 태도를 버려라. 핑계 대지 말고, 자격을 독점하지 말고, 링 위로 올라와라. 그리고 오직 그 잘난 ‘손맛’ 하나로 비장애인들과 정정당당하게 겨뤄 이겨라. 소비자의 선택이라는 가장 잔인하고도 공정한 심판대 위에서 살아남는 자만이, 이 사회를 향해 진정한 존엄과 차별 없는 대우를 요구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