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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사복무가 필요한 곳은 북한이 아니라 보험업계다”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5. 12. 7. 07:37

설계사여, 인민을 고객으로 바꿔 읽어보라

북한 노동신문에서 찾은 보험업계 최고의 명언

어제 우연히 북한 노동신문 기사를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거… 그냥 ‘인민’을 ‘고객’으로 바꾸면 보험설계사 윤리강령 아닌가?”
기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인민에 대한 멸사복무는 인민의 요구와 리익을 실현하는것을 최대의 중대사로 내세우고 인민을 위해서는 천만금의 재부도 아끼지 않으며 지어 생명도 서슴없이 바치는 인민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며 헌신입니다.”
ㅋㅋㅋㅋㅋ 진지하게, 이걸 설계사 버전으로 바꿔보자.
“고객에 대한 멸사복무는 고객의 요구와 이익을 실현하는 것을 최대의 중대사로 내세우고, 고객을 위해서는 천만금의 수수료도 아끼지 않으며, 심지어 명예도 서슴없이 바치는 고객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며 헌신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이게 진짜 명언 아닌가?
왜 ‘보팔이’라는 조롱이 생겼을까
요즘 보험설계사를 조롱하는 말로 ‘보팔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답은 명확하다. 일부 설계사들이 고객의 이익보다 자신의 커미션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필요하지 않은 보험을 억지로 권유하고
해지환급금이 적은 상품 정보는 숨기고
보장내용은 대충 설명한 채 계약만 따내려 하고
고객이 손해를 보든 말든 내 실적만 챙기고...
이런 행태가 반복되면서 보험설계사라는 직업 자체가 신뢰를 잃어버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노동신문에 나온 ‘멸사복무’ 정신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이게 바로 설계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아닌가?
북한에게서 배울 단 하나의 교훈
오해하지 마시라. 북한 체제를 옹호하자는 게 절대 아니다. ㅋㅋㅋ
다만, “자기 이익보다 공동체(고객)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그 정신만큼은… 우리 보험설계사들이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같은 기사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주체110(2021)년 6월 어느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인민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고 애로를 제때에 풀어주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가 최중대사로 내세우는 활동원칙이라고 하시였습니다.”
“우리 당이 신성하게 내세우고있는 위민헌신의 리념은 실지 뼈를 깎고 살을 저미면서 인민의 생명과 생활을 책임지고 무조건적인 복무로 인민을 받드는 실천의 지침이고 행동의 기준이라고 가르쳐주시였습니다.”
ㅋㅋㅋㅋㅋ “뼈를 깎고 살을 저미면서 고객의 생명과 생활을 책임진다”… 이거 그대로 보험설계사 선서문 아니냐고.
그리고 이 구절도 있었다:
“일군들은 어려운 일에 한몸을 내대고 인민을 위해 밤잠을 잊고 피타게 사색하여야 하며 인민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서 투쟁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ㅋㅋㅋㅋㅋㅋ 이거 완전 설계사 버전으로 바꾸면:
“설계사들은 어려운 일에 한몸을 내대고 고객을 위해 밤잠을 잊고 피타게 사색하여야 하며, 고객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서 일의 보람을 찾아야 한다”
농담 아니고, 이게 진짜 설계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보험금 청구 시 의료자문을 강요당하는 고객들, 고지의무 위반으로 꼬투리 잡히는 사람들, 약관 해석 차이로 보장을 거부당하는 분들… 이런 어려운 일에 우리가 한몸을 내대고 피타게 고민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객이 “당신 덕분에 보험금 받았어요,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할 때, 그 웃음소리에서 보람을 찾는 게 진짜 설계사의 모습 아닌가?
진짜 고객제일주의란 무엇인가
또 다른 기사에는 이런 표현도 있었다:
“당과 국가는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고 인민들은 당과 국가에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며 진정을 다해 받드는 바로 여기에 인민대중제일주의가 구현된 우리 국가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ㅋㅋㅋㅋㅋ 이걸 보험업계 버전으로 바꿔보자.
“보험설계사와 보험회사는 고객을 위하여 멸사복무하고, 고객들은 설계사와 보험회사에게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며 진정을 다해 받드는, 바로 여기에 고객대중제일주의가 구현된 보험업계의 참모습이 있습니다.”
근데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이게 현실인가?
고객들이 보험회사를 진정으로 믿고 운명을 의탁하고 있나?
아니다. 오히려 의심하고, 불신하고, “보험금 안 주려고 온갖 핑계 대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주식회사 시스템의 한계
답은 명확하다. 현재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주식회사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주주의 이익 극대화를 위해 존재한다.
보험금은 최대한 적게 지급하고
수익은 최대한 많이 남겨서
주주 배당을 늘리는 것.
고객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충돌할 때, 주식회사는 당연히 주주를 선택한다.
겉과 속이 다른 현실
북한에는 이런 노래가 있다:
“아침 해가 찬란한 우리 조국은  
인민들이 주인된 행복한 나라”
ㅋㅋㅋㅋㅋ 근데 현실은 어떤가?
김씨 일가만 호의호식하고, 인민들은 배고픔에 시달린다.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외치지만, 정작 인민은 주인이 아니다.
그런데 보험업계도 똑같지 않나?
보험회사는 “고객의 행복을 지켜드립니다”라고 광고한다.  
“고객 중심 경영”을 외치고, “고객만족도 1위”를 자랑한다.
하지만 현실은?
보험회사 사장들과 주주들은 고객이 낸 보험료로 떵떵거리며 산다.
정작 고객들은 병에 걸렸을 때 제대로 보장받지 못한다.
보험금 청구하면 온갖 핑계로 지급을 거부한다.
약관 해석, 고지의무 위반, 면책사유… 안 주려고 별별 이유를 다 댄다.
겉으로는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외치면서 김씨일가와 간부들만 호의호식하는 북한이나,  
겉으로는 “고객의 행복”을 외치면서 보험금은 안 주려는 보험회사나 뭐가 다른가?
보험이탈자들의 등장
북한에서는 “탈북자”가 나온다.  
더 이상 체제를 믿을 수 없어서, 목숨 걸고 탈출한다.
우리는 그들을 북한이탈주민 이라고 부른다.

보험업계에서도 “보험이탈자”들이 나온다.
“보험은 사기다”
“보험회사는 돈만 받고 안 준다”
“차라리 그 돈으로 저축하는 게 낫다”
ㅋㅋㅋㅋㅋ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보험회사가 고객을 배신했기 때문이다.
상호회사 시스템으로의 전환
진정한 고객제일주의를 구현하려면 상호회사(mutual company) 시스템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상호회사란 무엇인가?
고객(계약자)이 곧 회사의 주인이다.
이익은 주주가 아닌 고객에게 돌아간다
배당도 계약자 배당으로 환원된다.
회사의 최우선 목표가 “고객의 이익”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고객을 위한 멸사복무”가 아닌가?
북한처럼 “인민이 주인”이라고 거짓말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고객이 주인이 되는 구조.
고객들이 보험회사에 “자기의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할 수 있는 구조.  
설계사들이 “고객의 높아가는 웃음소리”에서 진짜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시스템.
바로 여기에 고객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보험업계의 새봄이 있다.
필자의 다짐: 진짜 멸사복무를 실천하겠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나부터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설계사가 되겠다고.
구체적으로는 이렇게.

1. 수수료가 적어도 고객이 실제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은  담보만 넣어서 설계한다.
내 실적보다 고객의 필요가 먼저다. 커미션이 낮더라도 고객에게 정말 필요한 보험을 추천하겠다.
2. 불리한 조건도 투명하게 설명한다.
해지환급금, 면책기간, 보장 제외 항목… 불편한 진실도 정확히 알려주겠다. 계약 후 뒤통수 맞는 일은 절대 없게 하겠다.
3. 단기 실적보다 장기 신뢰를 쌓는다.
이번 달 실적 1위보다 10년 후에도 연락하고 싶은 설계사가 되는 게 목표다.
4. “뼈를 깎는” 노력으로 고객의 애로를 해결한다.
보험금 청구할 때, 보장내용 확인할 때, 계약 변경할 때… 고객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내가 먼저 발로 뛰겠다.
5. 상호회사 전환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
진짜 고객제일주의를 실현하려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보험회사가 상호회사로 전환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에 계속 요구하고 노력하겠다. 개인 설계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작을지 몰라도,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다.
결론: 진짜 멸사복무를 보여주자
유일하게 북한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자기 이익보다 공동체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태도.
보험설계사여, 노동신문 기사를 읽어보라.
그리고 ‘인민’을 ‘고객’으로 바꿔 읽어보라.
그게 바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다.
우리가 진짜로 그렇게 일한다면:
‘보팔이’라는 조롱은 사라질 것이고
‘설계사’라는 이름이 다시 존경받는 직업이 될 것이고
고객들은 우리를 신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