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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 기계들이 복지를 논한다고? 보험 유튜버 보험복지부의 위선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5. 11. 22. 00:24

복지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보험복지부”라는 위선: 영업 기계들에게 복지는 사치다

복지(福祉)
이 단어를 입에 담으려면 최소한의 자격이 있어야 한다.
복지는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모든 노력을 의미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불평등을 완화하고, 취약한 이들을 보호하는 것. 이것이 복지다.
그런데 “보험복지부: 보험설계사 성장의 종착지”라는 오픈카톡방을 보자.
이들은 과연 복지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아니다. 전혀 없다.
이들은 복지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복지라는 신성한 단어를 더럽히고 있을 뿐이다.
복지가 아니라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라고 써라
솔직하게 말하자.
그 커뮤니티의 진짜 이름은 이래야 한다.

“보험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 매출 목표 달성의 종착지”
이게 정직한 이름이다.
왜냐하면 그곳에서 논의되는 모든 것은 결국 어떻게 하면 더 많이 팔 것인가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번 달 실적 어떻게 채우세요?”
“수수료 좋은 상품 추천해주세요”
“거절 극복 화법 공유합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마인드 컨트롤”
“성공한 설계사의 영업 노하우”
이것은 복지가 아니다. 영업 기계의 성능을 높이는 방법론일 뿐이다.
기계를 더 효율적으로 돌리는 법. 기계가 고장 나지 않도록 정신을 세뇌하는 법. 기계의 출력을 극대화하는 법.
그래서 나는 묻는다.
왜 “복지”라는 거룩한 단어를 입에 담는가?
복지를 논하려면, 최소한 이런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설계사들은 왜 4대 보험도 없이 일하는가?”
“위촉계약은 정당한가?”
“실적 압박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수수료에만 의존하는 불안정한 삶은 개선될 수 없는가?”
“회사가 부당하게 보험금 지급을 거부할 때 우리는 고객 편에 서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가? 아니다.
그런 질문을 던지면 강퇴당한다.
그러니 그곳은 복지를 논하는 곳이 아니다. 영업 기계들이 서로의 성능을 점검하고, 고장 나지 않도록 격려하는 정비소일 뿐이다.
복지는 영업 실적과 양립할 수 없다
명확히 하자.
복지는 영업 실적과 양립할 수 없다.
복지는 사람을 목적으로 대한다. 영업은 사람을 수단으로 대한다.
복지는 존엄성을 보장한다. 영업은 숫자로 평가한다.
복지는 권리를 보호한다. 영업은 목표를 강요한다.
보험설계사 복지를 진지하게 논하려면, 영업 중심의 사고방식부터 버려야 한다.
그런데 “보험복지부”라는 커뮤니티는 어떤가?
모든 논의의 중심은 영업이다. 실적이다. 매출이다. 수수료다.
그러면서 복지를 운운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다. 사기다.
마치 노예 농장주가 “우리 농장은 노예 복지를 추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채찍질하면서 복지를 말하는 것이다.
영업 기계에게 어울리는 단어
“보험복지부”가 아니라 이런 이름이 정직하다.
1.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 연구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효율적으로 팔 것인가
고장 나지 않도록 정신력을 강화하는 법
마모된 부품(탈진한 설계사)을 교체하는 법
2. “매출 목표 달성 자조 모임”
“이번 달도 파이팅!”
“긍정 마인드로 극복합시다”
“우리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3. “보험 상품 판매원 커뮤니티”
솔직하게 인정하자. 당신들은 판매원이다.
회사가 그렇게 부른다. “영업사원”, “FC”라고.
복지 따위는 논하지 않는다. 오직 판매 기법만 논한다.
4. “실적 압박 생존자 모임”
매달 목표에 시달리는 사람들
해촉 위협에 떠는 사람들
서로 위로하지만 구조는 바꾸지 못하는 사람들
5. “회사 충성 영업사원 양성소”
회사를 위해 일한다
주주를 위해 실적을 올린다
고객은 목표 달성 수단이다
비판은 불허한다
이런 이름이 정직하다.
하지만 “복지”는 아니다. 절대로.
복지라는 단어가 가진 무게
복지라는 단어를 가볍게 여기지 마라.
복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투쟁으로 쟁취된 개념이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하루 16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어린이들이 공장에서 죽어갔다. 그들은 싸웠다. 목숨을 걸었다. 그 결과 1802년 공장법이 만들어졌다. 노동시간이 제한되고, 아동 노동이 금지되고, 안전 규정이 생겼다. 이것이 노동복지의 시작이다.
1970년 전태일 열사는 평화시장 재단사였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그의 죽음 이후 한국 노동복지가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은 전쟁과 대공황을 겪으며 깨달았다. 시장은 사람을 보호하지 않는다고.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야 한다고. 그래서 국민건강보험, 국민연금, 실업급여, 기초생활보장이 만들어졌다.
복지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피와 땀과 눈물로.
그런데 “보험복지부”는 무엇을 했는가?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글을 강퇴시켰다.
비판을 차단했다.
“긍정 마인드”로 현실을 덮었다.
이것이 복지를 논할 자격이 있는가?
복지를 논하려면 최소한 이것은 해야 한다
진짜 “보험설계사 복지”를 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최소한 이런 것들을 논의해야 한다.
1. 위촉계약 폐지
4대 보험 적용
퇴직금 보장
정규직 전환
안정적 기본급
질문: “보험복지부”에서 이 논의를 하는가? 아니다.
2. 실적 압박 개선
과도한 월 목표 철폐
목표 미달 시 불이익 금지
인간적 평가 기준
해촉 기준 명확화 및 제한
질문: “보험복지부”에서 이 논의를 하는가? 아니다.
3. 수수료 구조 투명화
수수료 부당 삭감 금지
투명한 수수료 체계
수수료 지급 지연 방지
합리적 수수료율 보장
질문: “보험복지부”에서 이 논의를 하는가? 아니다.
4. 설계사 노동조합 설립
집단 교섭권
부당 해고 방지
권익 보호 체계
회사와 대등한 협상
질문: “보험복지부”에서 이 논의를 하는가? 절대 아니다.
5. 고객 대리인으로서의 법적 지위
고객을 위해 회사와 싸울 권리
부당한 보험금 거부에 이의 제기
회사 방침보다 고객 이익 우선
법적 보호 장치
질문: “보험복지부”에서 이 논의를 하는가? 말도 안 된다.
이런 것들을 논의해야 복지다.
그런데 “보험복지부”는 무엇을 논의하는가?
“이번 달 실적 어떻게 채울까요?”
“수수료 좋은 상품 뭐예요?”
“거절당했을 때 마인드 컨트롤 어떻게 해요?”
이것은 복지가 아니다. 영업 기계 튜닝이다.
복지를 빙자한 세뇌
더 나쁜 것은 “보험복지부” 같은 커뮤니티가 복지를 빙자한 세뇌 공간이라는 점이다.
구조적 문제는 개인의 마인드 문제로 치환된다.
실적이 안 나온다? →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목표 달성이 힘들다? → “마인드를 바꾸세요”
회사가 부당하다? → “부정적인 생각은 독입니다”
수입이 불안정하다? → “더 열심히 하세요”
이것은 복지가 아니다. 가스라이팅이다.
문제는 구조에 있는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착취는 회사가 하는데, 설계사가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복지를 더럽히는 행위다.
진짜 복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힘든 것은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구조가 잘못됐습니다. 함께 싸웁시다.”
가짜 복지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이 힘든 것은 당신 마인드가 약해서입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세요.”
“보험복지부”는 어느 쪽인가?
명백히 후자다.
그러니 복지를 논할 자격이 없다.
영업 기계는 복지를 받을 자격이 없다는 말인가?
오해하지 마라.
나는 보험설계사들이 복지를 누릴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보험설계사들이야말로 복지가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위촉계약으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실적 압박에 시달리고, 언제 해촉당할지 모르는 공포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 이들이야말로 복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이것이다:
설계사들이 스스로를 “영업 기계”로 받아들이는 한, 복지는 불가능하다.
영업 기계에게는 복지가 없다. 있는 것은 성능 최적화뿐이다.
고장 나지 않도록 관리하고, 출력을 높이고, 수명을 연장하는 것. 이것은 복지가 아니다. 유지보수다.
진짜 복지를 원한다면, 스스로를 기계로 보는 시각부터 버려야 한다.
“나는 영업사원이 아니다.”
“나는 매출 목표를 채우는 도구가 아니다.”
“나는 회사의 수익을 위해 존재하는 부품이 아니다.”
“나는 인간이다. 존엄성을 가진 인간이다.”
“나는 고객의 대리인이다. 고객을 보호하는 전문가다.”
이런 선언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조직적으로 외쳐야 한다.
혼자가 아니라 함께. 노동조합을 만들어서. 집단 행동으로.
그때 비로소 복지를 논할 자격이 생긴다.
복지라는 간판을 내려라
“보험복지부: 보험설계사 성장의 종착지”
이 간판은 거짓이다.
복지도 없고, 성장도 없다.
있는 것은:
영업 실적 강박
수수료 집착
마인드 컨트롤 세뇌
비판 차단
구조적 문제 은폐
이것은 복지가 아니다.
그러니 제안한다.
정직하게 간판을 바꿔라:
“보험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 센터”
“매출 목표 달성 자조 모임”
“실적 압박 생존자 위로 공간”
“회사 충성 영업사원 양성소”
이런 이름이 훨씬 정직하다.
복지라는 신성한 단어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마라.
복지는 당신들처럼 영업 실적에 목을 매는 사람들이 입에 담을 자격이 없는 단어다.
복지는 투쟁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복지는 구조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복지는 연대하는 사람들의 언어다.
당신들은 투쟁하지 않는다. 비판을 차단한다. 연대하지 않고 경쟁한다.
그러니 복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진짜 복지를 원하는가?
만약 진짜로 “보험설계사 복지”를 원한다면:
첫째, 영업 중심 사고를 버려라
실적이 전부가 아니다
수수료가 목적이 아니다
당신은 판매원이 아니라 상담사다
고객은 타겟이 아니라 보호 대상이다
둘째,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라
위촉계약이 착취 구조임을 인정하라
실적 압박이 비인간적임을 인정하라
회사가 당신을 도구로 본다는 것을 인정하라
셋째, 비판을 허용하라
불편한 진실을 듣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구조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강퇴하지 마라
“부정적”이라는 낙인으로 비판을 차단하지 마라
넷째, 조직하라
설계사 노동조합을 만들어라
집단 교섭을 시작하라
함께 회사와 싸워라
다섯째, 투쟁하라
권익은 요청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투쟁으로만 쟁취된다
편안함을 버리고 일어나라
이것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복지”를 입에 담을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 “보험복지부”는 이 중 어느 것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복지를 논할 자격이 없다.
맺음말: 복지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복지는 아름다운 단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리며 싸워서 쟁취한 것이다.
공장에서 죽어간 노동자들.
거리에서 곤봉에 맞은 파업 노동자들.
감옥에 갇힌 노조 간부들.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전태일.
이들이 복지를 만들었다.
그런데 “보험복지부”는 무엇을 했는가?
영업 실적 이야기만 하다가, 비판하는 사람을 강퇴시켰다.
이것이 복지를 논할 자격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복지를 논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이것을 증명하라:
구조적 문제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가?
비판을 허용할 용기가 있는가?
회사에 맞설 각오가 있는가?
동료들과 연대할 의지가 있는가?
투쟁할 결심이 있는가?
이것을 할 수 없다면, 제발 복지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마라.
차라리 정직하게 말하라:
“우리는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 모임입니다.”
“우리는 매출 목표 달성에만 관심 있습니다.”
“우리는 회사의 충성스러운 판매원입니다.”
이게 정직한 태도다.
하지만 복지를 빙자하지는 마라.
복지는 당신들이 더럽힐 수 있는 단어가 아니다.
복지는 싸우는 사람들의 것이다.
당신들은 싸우지 않는다.
그러니 복지를 말할 자격이 없다.
복지라는 이름을 더럽히지 마라.
영업 기계 성능 최적화나 논하라.
그것이 당신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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