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 사장들을 볼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 있다. 분노? 혐오? 아니, 그보다 더 깊은 실망감이다. 이들은 보험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불안을 먹고사는 자들이다. 그것도 모자라 정당한 보험금 지급조차 회피하면서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고 있다.
고객 돈으로 투자하고, 보험금은 안 주려고 발버둥
보험회사 사장들의 행태를 보면 가관이다. 고객이 낸 보험료로 유가증권에 투자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해서 수천억, 수조 원의 이익을 거둔다. 그 돈의 주인이 누구인가? 바로 매달 성실하게 보험료를 내는 국민들이다.
그런데 정작 고객이 보험금을 청구하면 어떻게 되는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보험회사들끼리 서로 ‘보험금 안 주기 대회’를 벌인다. 의료자문을 남발하고, 고지의무 위반을 트집 잡고, 온갖 핑계를 대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삭감한다.
“투자로 번 돈은 회사 것이고, 보험금은 최대한 안 주는 게 우리 능력”이라는 식이다. 이게 정상적인 사업인가? 고객의 돈으로 장사하면서 고객에게 돌려줄 돈은 아끼는 이 뻔뻔함을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가?
사람의 불안을 팔아먹는 비윤리적 장사
더 역겹운 것은 보험회사들이 사람의 불안 심리를 이용해서 이익을 취한다는 점이다. “암에 걸리면 어떡하죠?”, “사고가 나면 큰일 나요”, “자녀 교육비 준비 안 하시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공포를 자극하고 불안을 조장해서 보험을 판다.
보험의 본래 목적은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어야 한다. 위험에 대비하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상호부조의 정신. 그것이 보험이다. 그런데 지금 보험회사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불안을 조장해서 계약을 따내고, 막상 사고가 나면 보험금을 안 주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
이것은 나는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불안과 두려움을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것, 그리고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는 외면하는 것. 이런 장사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보험 영리화가 모든 문제의 근원
내가 보험이 영리화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보험이 영리 산업이 되는 순간, 보험회사의 목표는 고객 보호가 아니라 이익 극대화가 된다.
이익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보험료는 많이 받고, 보험금은 적게 지급하면 된다. 그래서 불필요한 특약을 잔뜩 팔고, 막상 보험금 청구가 들어오면 의료자문을 남발하며 지급을 거부한다. 이것이 영리 보험사의 본질이다.
보험회사 사장들은 주주 배당과 자신의 성과급을 위해 일한다. 고객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사회에서 보고하는 것은 ‘올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보험금을 지급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가’다.
이런 구조에서 고객이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하다. 보험회사가 영리를 추구하는 한, 고객과 보험회사는 언제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주주 배당과 임원 성과급으로 새는 돈
보험회사가 벌어들이는 천문학적 이익은 어디로 가는가? 주주 배당금과 임원 성과급으로 사라진다. 보험회사 사장들의 연봉을 보라. 수십억 원에 달한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온 것인가? 고객이 낸 보험료에서 나온 것이다.
고객은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 보험료를 낸다. 그런데 그 돈은 정작 고객을 보호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 보험회사 사장의 호화로운 삶을 유지하고,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나눠주는 데 쓰인다.
이게 정당한 일인가? 국민의 불안을 이용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자신들만 배를 불리는 것. 보험회사 사장들은 고객에게 감사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은 오히려 고객을 적으로 여긴다. 보험금을 청구하는 고객을 ‘손실’로 보고, 어떻게든 지급을 회피하려 한다.
보험금 안 주기 대회의 실상
보험금 지급 단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고객이 암 진단을 받아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회사는 의료자문을 의뢰한다. “이 암은 0기인데, 약관상 0기는 해당 안 됩니다.” “이 진단서는 기준에 맞지 않습니다.” 온갖 이유를 들어 지급을 거부한다.
교통사고로 다쳐서 보험금을 청구하면, “이 부상은 기존 질환의 악화입니다. 사고와 직접적 인과관계가 없습니다”라며 지급을 거부한다.
가입할 때는 “이 보험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라고 하더니, 막상 사고가 나면 “약관을 자세히 읽어보셨어야죠”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보험회사마다 보험금 지급률을 경쟁적으로 낮추려 한다. 지급률이 낮을수록 회사 이익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험금 심사 부서는 ‘어떻게 하면 보험금을 안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마치 고객과 전쟁이라도 하듯이.
이익 추구 vs 고객 보호: 양립할 수 없는 목표
보험회사가 이익을 추구하는 순간, 고객 보호는 뒷전이 된다. 이 두 가지 목표는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보험회사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고객은 누구인가? 평생 보험료만 내고 보험금은 한 번도 청구하지 않는 고객이다. 반대로 가장 싫어하는 고객은 보험금을 자주 청구하는 고객이다.
이게 정상적인 보험 시스템인가? 보험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다. 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보장받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그런데 정작 보장받으려 하면 보험회사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막는다.
영리 추구가 목표인 한, 이 모순은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보험회사 사장은 주주와 이사회에 보고해야 한다. “올해 우리 회사의 이익이 작년보다 줄었습니다”라고 보고할 수 있는 사장이 있는가? 없다. 그러니 어떻게든 보험금 지급을 줄이고, 수익을 늘리려 한다.
보험회사 사장들의 위선
보험회사 사장들은 대외적으로는 그럴듯한 말을 한다. “고객 만족이 최우선입니다”, “신뢰받는 보험회사가 되겠습니다”, “완전판매를 실천하겠습니다.”
하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정반대의 지시를 내린다. “올해 보험금 지급률을 작년보다 5% 낮춰라”, “의료자문을 더 활용해서 부지급 건수를 늘려라”, “설계사들에게 실적 압박을 강화해라.”
이런 이중성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가? 위선이다. 겉으로는 고객을 위한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고객을 상대로 어떻게 더 많은 이익을 짜낼까 고민한다.
설계사들에게는 “완전판매 하라”고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보험금 지급 단계에서 온갖 불완전 지급을 일삼는다. 이게 보험회사 사장들의 실상이다.
국가가 나서야 하는 이유
이것이 바로 내가 보험 영리화를 반대하고, 국가 보험사업 체계를 주장하는 이유다.
보험은 본래 사회안전망이었다. 서로 돕고, 위험을 분산하며, 어려울 때 함께 이겨내는 공동체의 정신. 그것이 보험의 본질이다. 그런데 영리화되면서 이 모든 것이 망가졌다.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사업 체계에서는 이익 극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국민 보호가 목표다. 보험금 지급률을 낮출 이유도, 의료자문을 남발할 이유도, 고지의무 위반을 트집 잡을 이유도 없다. 정당한 청구에는 정당하게 지급하면 그만이다.
보험으로 얻은 수익은 주주 배당금이 아니라 결식아동, 독거노인, 장애인, 저소득층 지원에 쓰인다. 이것이 보험 수익이 쓰여야 할 올바른 방향이다.
보험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보험
나는 보험회사 사장들이 싫다. 그들은 국민의 불안을 이용해서 배를 불리고, 정작 국민이 도움을 요청하면 외면한다. 고객의 돈으로 투자해서 막대한 이익을 올리면서도, 보험금은 한 푼이라도 덜 주려고 발버둥 친다.
이런 시스템이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 보험은 보험회사 사장의 배를 불리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이다.
위촉제를 폐지하고, 국가 보험사업 체계를 구축하고, 보험을 다시 국민의 품으로 되돌려야 한다. 그래야만 보험회사 사장이 아니라 국민이 주인인 보험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보험회사 사장들이여, 당신들은 고객의 불안으로 호의호식하면서 정작 고객이 어려울 때는 외면한다. 그래서 나는 당신들이 싫다. 그리고 이 영리화된 보험 시스템 전체가 싫다.
이제 바뀌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보험, 진짜 보호하는 보험. 그것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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