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회사가 주식회사로 운영되면 안 되는 이유
“메리츠화재가 고객님의 행복을 지켜드리겠습니다.”
메리츠화재 증권을 열면 맨 처음 나오는 문구다. 참 아름다운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메리츠화재가 주주들의 수익을 높여드리겠습니다.”
이게 진짜 문구 아닌가? ㅋㅋㅋ 고객의 행복? 천만에 말씀. 주주의 배당금이 먼저다. 이것이 주식회사 보험사의 냉혹한 현실이다.
주식회사 보험사의 태생적 모순
보험회사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는 순간, 근본적인 모순이 발생한다. 주식회사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주주 이익 극대화다. 상법 제382조의3에도 명시되어 있다. “이사는 회사의 이익을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 여기서 ‘회사의 이익’은 곧 주주의 이익을 의미한다.
그런데 보험의 본질은 무엇인가? 상호부조다. 위험을 함께 나누고, 어려울 때 서로 돕는 것. 이 두 가지 목적은 애초에 양립할 수 없다.
주주는 배당금을 원한다. 더 많은 배당금을 위해서는 더 많은 이익이 필요하다. 보험회사가 이익을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보험료는 많이 받고, 보험금은 적게 지급하는 것. 바로 여기서 고객과의 이해충돌이 시작된다.
주주총회에서 벌어지는 일
보험회사 주주총회에 가보라. 거기서 논의되는 것이 무엇인가?
“올해 보험금 지급률이 작년보다 3% 상승했습니다. 이는 회사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험금을 많이 지급한 것이 ‘부정적’이라니. 고객이 정당한 보험금을 받은 것이 회사에 나쁜 일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가?
주주들은 묻는다. “보험금 지급을 줄일 방안은 무엇인가?”, “손해율을 개선할 계획은?”, “배당금 증액은 언제쯤 가능한가?”
여기에 ‘고객 보호’라는 단어는 없다. 오직 ‘수익’, ‘배당’, ‘주가’, ‘손해율’만 있을 뿐이다. 이것이 주식회사 보험사의 본질이다.
이사회 보고서에 담긴 진실
보험회사 이사회 보고서를 보면 더 적나라하다.
“의료자문 활용률 제고를 통해 부지급 건수 15% 증가”
“고지의무위반 적발 강화로 계약 해지율 8% 상승”
“보험금 지급 심사 기준 강화로 평균 지급액 12% 절감”
이런 내용이 ‘성과’로 보고된다. 고객에게 보험금을 안 준 것이, 계약을 해지한 것이, 지급액을 깎은 것이 회사의 실적으로 자랑스럽게 보고된다.
그리고 이사회는 박수를 보낸다. “훌륭한 성과입니다. 이번 분기 실적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이게 정상인가? 고객의 정당한 보험금을 거부한 것이 성과인가? 그런데 주식회사 구조에서는 이것이 당연하다. 보험금을 적게 지급할수록 이익이 늘고, 주가가 오르고, 배당금이 증가하니까.
배당금이라는 괴물
2023년 주요 보험회사들의 배당금을 보자. 삼성화재 4,732억 원, 현대해상 2,103억 원, DB손해보험 1,847억 원. 합치면 수조 원이다.
이 돈은 어디서 나왔는가? 고객이 낸 보험료다. 고객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보험료를 냈다. 그런데 그 돈은 보험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주주의 주머니로 들어간다.
더 가관인 것은 배당성향이다. 많은 보험회사가 당기순이익의 30~40%를 배당금으로 지급한다. 이익의 절반 가까이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만약 이 배당금을 고객에게 환원한다면? 보험료를 낮추거나, 보험금 지급을 늘리거나, 새로운 보장을 추가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회사 구조에서는 불가능하다. 주주가 허락하지 않는다.
임원 보수라는 또 다른 구멍
배당금만이 아니다. 보험회사 임원들의 연봉을 보면 기가 막힌다.
보험회사 CEO 연봉이 수십억 원에 달한다. 임원 한 명당 평균 보수가 10억 원을 넘는다. 이 돈 역시 고객의 보험료에서 나온다.
그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고객을 보호하는가? 아니다. 보험금 지급률을 낮추고, 영업이익을 늘리고, 주가를 올리는 일을 한다. 그래야 자신의 성과급이 늘어나니까.
임원 성과 평가 지표를 보라. “고객만족도”, “보험금 지급 신속성” 같은 항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신 “영업이익률”, “ROE”, “주가 상승률” 같은 지표가 핵심이다.
결국 임원들은 고객이 아니라 주주를 위해 일한다. 주주가 만족해야 자신의 지위가 보장되고 보수가 늘어나니까.
유한회사나 국가 운영이 답인 이유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보험회사를 유한회사나 상호회사로 운영하거나, 아예 국가가 운영해야 한다.
유한회사나 상호회사의 장점
유한회사는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는다. 주가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단기 실적에 목매지 않아도 된다. 배당 압박도 덜하다.
상호회사는 더 낫다. 고객이 곧 주인이다. 계약자가 곧 사원이다. 회사의 이익은 고객에게 환원된다. 배당금은 계약자 배당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보험 본연의 모습이다.
실제로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보험사가 상호회사로 운영된다. 일본의 생명보험회사 대부분, 미국의 많은 대형 보험사가 상호회사 형태다. 한국도 과거에는 상호회사가 있었지만, 주식회사로 전환하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국가 운영의 필요성
더 근본적인 해결책은 국가 운영이다. 보험은 사회안전망이다. 국민의 기본적 안전을 책임지는 공공재다. 이것을 영리 목적의 사기업에 맡겨서는 안 된다.
국가가 운영하는 보험은 이익 극대화가 목표가 아니다. 국민 보호가 목표다. 보험금 지급률을 낮출 이유도, 배당금을 늘릴 이유도, 주가를 올릴 이유도 없다.
정당한 청구에는 정당하게 지급한다. 그게 전부다. 복잡한 이해관계도, 주주와의 갈등도 없다. 오직 국민을 위한 보험.
보험 수익은 어디에 쓰이는가? 주주 배당이 아니다. 사회 취약계층 지원, 재난 피해 복구, 공공의료 확충, 안전망 강화에 쓰인다. 이것이 보험 수익의 올바른 사용처다.
주식회사 보험의 종착역
주식회사 보험사가 계속 영업하면 어떻게 되는가?
보험료는 계속 오른다. 주주는 더 많은 이익을 원하니까. 보험금 지급은 계속 까다로워진다. 손해율을 낮춰야 하니까. 약관은 계속 복잡해진다. 면책 조항을 늘려야 하니까.
그리고 고객과 보험사의 갈등은 심화된다. 소송은 증가한다. 불완전판매는 계속된다. 보험 불신은 깊어진다.
종착역은 뻔하다. 보험이 더 이상 안전망이 아니라 금융상품이 되고, 투기 수단이 되고, 고객을 착취하는 도구가 되는 것. 이미 그 길로 가고 있다.
메리츠화재의 거짓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메리츠화재가 고객님의 행복을 지켜드리겠습니다.”
거짓말이다. 메리츠화재는 주주의 수익을 지킨다. 고객의 행복은 그다음이다. 아니,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보험증권에 이렇게 써야 정직한 것 아닌가?
“메리츠화재는 주주 이익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고객의 보험금 청구는 회사 수익을 감소시키므로, 적법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거부하거나 삭감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식회사의 의무입니다.”
이게 진실이다. 잔인하지만 정직한 진실.
구조를 바꿔야 한다
개별 보험회사를 욕해봐야 소용없다. 착한 사장, 나쁜 사장의 문제가 아니다. 구조의 문제다.
주식회사 구조에서는 아무리 착한 사장이 와도 결국 주주 이익을 우선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이사회에서 쫓겨난다. 주주대표소송을 당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러니 구조를 바꿔야 한다. 보험회사를 주식회사로 운영하는 시스템 자체를 바꿔야 한다.
유한회사로 전환하거나, 상호회사로 전환하거나, 국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어떤 방식이든, 주식회사 형태만은 안 된다.
보험의 주인을 바꾸자
보험의 주인이 누구인가?
지금은 주주다. 주주가 주인이고, 고객은 그저 보험료 내는 사람일 뿐이다. 이것이 주식회사 보험의 현실이다.
이제 바꿔야 한다. 보험의 주인은 고객이어야 한다. 국민이어야 한다. 주주가 아니다.
유한회사나 국가 운영 체계에서는 이것이 가능하다. 고객이 주인이고, 보험료는 고객 보호를 위해 쓰이고, 수익은 사회에 환원된다.
이것이 보험 본연의 모습이다. 이것이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곳이다.
“메리츠화재가 고객님의 행복을 지켜드리겠습니다.”
이 문구가 거짓말이 아니려면, 메리츠화재는 주식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주식회사인 한, 이 문구는 영원히 거짓말로 남을 것이다.
보험회사가 주식회사로 운영되면 안 되는 이유. 이제 명확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