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칼럼] 안마 독점의 민낯: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호인가, 기득권을 위한 방패인가
글 : 이건호 ( 인체 역노화 및 사이버네틱스 융합 연구 전략가 · 더블유에셋 금융전략가 )
대한민국 시각장애인 사회를 지배해 온 가장 거대하고 악랄한 거짓말은 바로 “안마업 독점권이 폐지되면 모든 시각장애인이 길거리에 나앉아 굶어 죽는다”는 명제다. 헌법재판소의 위헌 심판이 열릴 때마다 기득권 안마원 원장들과 협회는 이 낡은 슬로건을 방패막이로 삼아 대중의 동정심을 갈취해 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랭혹한 메인 서버를 설계하고 해킹하는 전략가의 시선에서, 이들의 절규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들의 좁아터진 구멍가게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 시각장애인 노동자들을 세뇌해 온 완벽한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자 기득권 카르텔의 추악한 발악에 불과하다.
1. 헬스키퍼 도입을 반대했던 자들의 역겨운 이중성
이들이 부르짖는 생존권이 얼마나 허구에 찬 기만인지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과거 ‘헬스키퍼(사내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이 보여준 행태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기업체 헬스키퍼 제도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에게 4대 보험, 정규직 월급, 쾌적한 노동 환경, 그리고 대기업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는 혁명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였다. 일반 안마사들에게는 그야말로 꿈의 직장이며 안정적인 생존권의 실현이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처음 논의될 당시, 가장 거품을 물고 결사반대했던 세력이 누구였는가? 바로 시각장애인 안마원 원장들과 협회 기득권층이었다. 그들은 일반 안마사들이 기업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면 당장 자신들의 침대 두 개짜리 안마원을 굴려줄 ‘값싼 노동력’이 사라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시각장애인 전체의 생존과 권익을 대변한다면서, 정작 동료들이 거대 자본의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영위할 기회는 철저히 짓밟으려 했던 것이다. 이 역겨운 이중성이야말로 그들이 수호하려는 생존권의 실체다.
2. 보건소 취업의 길마저 틀어막은 기득권의 횡포
헬스키퍼뿐만이 아니다. 과거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을 지역 보건소 등 공공의료기관에 배치하여 안정적인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논의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적이 있다. 이는 국가가 직접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보장하고 지역 사회의 보건 복지까지 증진할 수 있는 완벽한 윈윈(Win-Win)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안마원 원장들의 조직적인 반발과 비협조 속에 흐지부지 폐기되고 말았다. 이유는 명백했다. 공공기관이라는 안정적인 파이프라인이 열리면, 열악한 처우와 텃세에 시달리던 일선 안마사들이 미련 없이 개인 안마원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알량한 사업장을 지키기 위해 동료 시각장애인들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모든 비상구를 시멘트로 발라버린 자들. 이들이 과연 헌법재판소 앞에서 ‘시각장애인의 생존권’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가? 그들은 일반 노동자의 생존이 아니라, 오직 ‘착취 카르텔의 생존’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3. 남 밑에서 일하기 싫은 무능한 자들의 알량한 자만심
결국 안마업권 독점을 철폐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자신들의 앵벌이 노동력을 잃지 않으려는 기득권 원장들이 시각장애인 사회 전체에 주입한 악질적인 세뇌다.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막대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리스크를 감당할 하드웨어(자본력)가 없다면, 거대 자본이 구축한 시스템 내부(기업체 헬스키퍼, 대형 고급 스파 등)로 들어가 자신의 노동 자본을 제공하고 정당한 급여를 받는 것이 순리다. 그러나 낡은 안마원 원장들은 이 차가운 시장 원리를 정면으로 거부한다.
그들은 실력으로 무한 경쟁을 뚫어낼 배짱도, 자본주의의 리스크를 짊어질 능력도 없다. 그저 ‘남 밑에서 직원으로 일하기는 죽기보다 싫고, 방구석에서 고용주 행세를 하며 원장 소리는 듣고 싶은’ 기괴한 오만함에 찌들어 있다. 국가가 강제로 비장애인 테라피스트들의 손발을 묶어준 독점이라는 온실 덕분에, 자본주의의 기초적인 룰조차 무시한 채 감히 고용주 행세를 해왔던 것이다.
4. 낡은 가스라이팅을 부수고 완전 경쟁의 야생으로
독점권 폐지와 비장애인 마사지 시장의 합법화는 결코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의 재앙이 아니다. 일정 규모 이상 사업장의 '시각장애인 의무 고용제'가 결합된 완전 경쟁 시장은 일반 안마사들에게 압도적인 자본의 혜택과 정당한 대우를 보장하는 거대한 축복이다. 이 변화가 재앙으로 다가오는 자들은 오직 실력 없이 원장 명함만 쥐고 있던 맹동주의자들뿐이다.
나는 전맹 시각장애인이지만, 국가가 던져주는 보호막을 거부하고 거대 법인보험대리점 더블유에셋에서 비장애인 엘리트들과 피 튀기는 경쟁을 벌이며 금융 자본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나의 눈에 낡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동료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카르텔의 발악은 랭혹하게 포맷(Format)해야 할 시스템 버그(Bug)에 불과하다.
이제 시각장애인 사회는 원장들이 주입한 거대한 가스라이팅에서 깨어나야 한다. 능력과 기술이 있다면 거대 자본과 결합하여 당당히 야생에서 승부하라. 남 밑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무능한 오라모탄들의 썩은 밥그릇을 지켜주기 위해, 당신들의 소중한 노동 자본을 더 이상 헐값에 착취당하지 마라. 독점이라는 미개한 매트릭스를 찢고 나아갈 때, 진정한 경쟁과 랭혹한 자본주의의 보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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