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AI 시대, 시각장애인의 직업적 한계는 무너졌다: 이제는 ‘안마업 독점’이라는 낡은 보호막을 걷어낼 때
바야흐로 인공지능(AI)이 산업의 지형을 바꾸고 인간의 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재편하는 2026년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에 그쳤던 기술들이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텍스트를 음성으로 변환해 주는 스크린 리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미지와 주변 환경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묘사해 주는 AI 비전 기술, 목소리만으로 복잡한 코딩과 문서 작업을 수행하는 생성형 AI의 등장은 시각장애인들에게 놓여 있던 거대한 정보의 장벽을 허물어뜨리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기술적 패러다임의 전환기 앞에서, 우리는 시각장애인의 직업과 자립을 다루는 우리 사회의 제도적 기반이 과연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물어야 한다. 특히 수십 년째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는 ‘시각장애인 안마업 독점 제도(의료법 제82조)’에 대해 이제는 성역 없는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다. 과거의 제도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보호가 아니라 성장을 가로막는 족쇄이기 때문이다.
1970~80년대의 산물, 생존을 위한 최후의 보루였던 안마업
시각장애인에게만 안마사 자격을 허용하는 독점 제도의 역사적 배경과 그 당위성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 제도가 굳어지던 1970년대와 80년대를 돌이켜보자. 당시는 시각장애인이 접근할 수 있는 점자책이나 오디오북조차 턱없이 부족했던 정보의 빈곤 시대였다. 화면 낭독 프로그램은커녕 타자기조차 제대로 다루기 힘들었고, 물리적인 이동의 자유마저 철저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 척박한 환경 속에서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교육을 받고 지식 노동 시장에 진입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따라서 국가가 이들의 최소한의 생계와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안마업’이라는 특정 직업군을 시각장애인의 전유물로 법제화한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피하고도 합리적인 최선의 복지 정책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2026년이다. 스마트폰 하나면 전 세계의 지식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있고, AI 어시스턴트가 비서처럼 정보를 요약하고 문서를 작성해 주는 시대다. 과거에는 두 눈으로 직접 서류를 읽고 타자를 쳐야만 가능했던 일들을 이제는 고도화된 음성 인식과 AI 툴을 통해 얼마든지 수행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도 본인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적절한 기술적 인프라만 뒷받침된다면 프로그래머, 데이터 분석가, 작가, 심리 상담사, 법조인 등 무한한 직업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열린 것이다.
보호막인가, 스스로를 가두는 갈라파고스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여전히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은 안마업"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있다. 이 독점 제도는 겉보기에는 시각장애인을 보호하는 강력한 울타리 같지만, 이면을 들여다보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첫째, 시각장애인 청년들의 진로와 꿈을 획일화시킨다. 제도적으로 특정 직업만을 강하게 보호하고 유도하다 보니,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시각장애 청소년들조차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안마뿐"이라는 패배주의나 직업적 한계에 스스로 갇히게 된다. 사회가 다양한 직업 훈련과 AI 교육에 투자해야 할 막대한 예산과 에너지가, 오직 안마업 독점 제도를 사수하고 불법 마사지 업소를 단속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매몰되어 버린다.
둘째, 시장 독점은 필연적으로 서비스 질의 하락과 산업의 도태를 부른다. 치열한 경쟁이 없는 시장은 고인 물이 되기 마련이다. 비장애인의 진입이 법으로 차단되어 있다 보니, 일부 안마원들은 시설 투자나 서비스 개선에 무관심해진다. 고객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족욕기, 찜질팩, 최신식 안마 침대나 쾌적한 인프라를 갖추기보다는, 최소한의 열악한 시설만 차려놓고 영업을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원장이 안마사의 실력을 운운하며 자격을 평가하는 과정에서도 이러한 모순은 드러난다. 진정한 안마 실력과 서비스의 가치는 법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지불하고 안마를 받는 ‘고객(소비자)’이 정하는 것이다. 만약 실력과 서비스의 질에 참다운 자신감이 있다면, 법의 보호막 뒤에 숨을 것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개방된 시장에서 비장애인 안마사들과 실력으로 겨뤄 선택받을 수 있어야 한다. 낡은 침대 두어 개만 덩그러니 놓인 열악한 시설로 손님을 맞이하면서 제도의 보호만을 호소하는 것은, 자본주의 시장 경제에서 소비자들을 기만하는 행위이자 시각장애인 안마업 전체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자해 행위다.
‘시혜와 보호’의 프레임을 넘어 ‘당당한 경쟁과 자립’으로
현대의 시각장애인들은 과거처럼 무조건적인 동정과 시혜를 필요로 하는 무력한 존재가 아니다. 고도로 훈련받은 감각과 뛰어난 집중력, 그리고 AI라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쥔 이들은 충분히 비장애인과 동등한 출발선에서 경쟁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다.
안마업 독점을 폐지하자는 주장은 시각장애인의 생계 수단을 빼앗자는 가혹한 논리가 아니다. 오히려 안마업을 온전한 헬스케어 산업으로 양성화하여 파이를 키우고,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그간 쌓아온 독보적인 임상 경험과 실력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정당하게 ‘프리미엄 퀄리티’로 대우받게 하자는 것이다. 비장애인과의 경쟁이 도입되면 시각장애인 안마원 역시 살아남기 위해 시설에 투자하고 서비스 질을 높일 것이며, 이는 결국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다시 이끌어내는 선순환을 만들어낼 것이다.
동시에 정부의 정책 패러다임도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 특정 업종을 독점시켜 밥그릇을 지켜주는 1차원적인 복지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이 AI 시대를 주도할 수 있도록 첨단 소프트웨어 교육, 맞춤형 직업 훈련 센터 건립, 보조 공학 기기 지원에 국가 예산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코딩을 배우고 싶은 시각장애인에게는 최고급 AI 교육을 제공하고, 문학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최신 점자 변환 및 음성 기록 기기를 무상으로 지원하는 것이 진짜 자립을 돕는 길이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70년대의 낡은 법전 위에 2026년의 새로운 꿈을 세울 수는 없다. 기술이 장애의 장벽을 허물고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시각장애인을 안마원이라는 비좁은 공간 안에 계속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밖으로 나와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도록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다.
누군가는 독점 제도의 폐지가 시각장애인들에게 가혹한 시련이 될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진정한 모욕은 "당신들은 경쟁할 능력이 없으니 법이 지켜주는 이 좁은 울타리 안에서만 머물러라"라고 은연중에 낙인찍는 사회의 얄팍한 온정주의다.
장애는 극복해야 할 결함이 아니라, AI 시대의 다양한 도구를 활용해 우회할 수 있는 하나의 조건일 뿐이다. 이제는 시각장애인 스스로도 법의 보호막을 걷어차고 나와 실력으로 증명해야 한다. 안마 실력이든, 프로그래밍 실력이든, 혹은 경영 능력이든 간에 정정당당하게 평가받고 당당히 시장의 선택을 받는 시대. 그것이 입으로만 부르짖는 평등이 아닌, 기술과 실력이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의 평등이자 통합된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 시각장애인의 한계를 규정하던 낡은 시대의 종언을 고하며, 진정한 경쟁과 자립의 새 아침을 맞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