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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 기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투명한 사랑으로 : 왜 우리는 다자간 연애를 논해야 하는가

보험 카르텔 파괴자 2026. 9. 30. 13:20

[칼럼] 기만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투명한 사랑으로: 왜 우리는 다자간 연애를 논해야 하는가
최근 스레드나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들여다보면 관계의 파국을 알리는 비극적인 사연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결혼을 앞두고 파트너의 외도를 발견해 황급히 파혼을 결정했다는 눈물겨운 글부터, 무려 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헌신하며 사귀던 남자친구가 뒤에서는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처참하게 관계가 박살 났다는 사연까지. 이들의 절망과 배신감은 활자 너머로도 생생하게 전해진다. 세상은 외도를 저지른 이들을 향해 맹렬하게 돌을 던지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하지만 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배신과 이별의 쳇바퀴 속에서, 우리는 이제 조금 더 근본적이고 도발적인 질문을 마주해야 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독점'이라는 환상 속에서 서로를 기만하며 상처를 주고받을 것인가?
소유라는 강박이 낳은 비겁한 도피처, 바람과 불륜
우리는 흔히 연애나 결혼이 시작되는 순간, 상대방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나만의 것'으로 소유하게 되었다고 착각한다. 사회가 규정한 일부일처제의 굳건한 룰 안에서, 나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배타적 독점권이 사랑의 유일한 증명서로 통용된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종종 이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려 꿈틀거린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새로운 자극이나 또 다른 깊은 유대감을 원하면서도, 현재의 파트너가 주는 안정감과 안락함은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이기심. 결국 그들은 파트너의 눈을 가리고 몰래 담장을 넘는 '기만'을 선택한다.
외도와 바람이 그토록 치명적인 이유는 그들이 다른 사람과 육체를 섞거나 감정을 나누었기 때문만이 아니다. 나를 믿고 있는 파트너를 완벽하게 속인 채, 상대방이 현실을 직시하고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주체적인 권리를 철저히 빼앗아 버렸기 때문이다. 6년을 만난 애인이 뒤에서 다른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무너져 내리는 이유는, 그 6년이라는 시간 동안 내가 믿어왔던 세계 전체가 한순간에 조작된 세트장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가장 비겁한 정서적 폭력이다.
관계를 맺는 진짜 이유, 소유가 아닌 '충족'을 위하여
그렇다면 렌즈의 초점을 완전히 돌려보자. 애초에 우리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이유가 상대를 통제하고 내 시야 안에 감시하기 위함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손을 잡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일상의 고단함을 기대고, 서로의 다정함으로 나의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해서다.
만약 내가 관계 안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고 있다면 어떨까. 곁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넘치는 사랑을 표현하고, 나를 위해 기꺼이 시간과 정성을 쏟으며, 내 삶을 조금도 외롭지 않게 채워준다면 말이다. 나를 향한 애정과 다정함이 이토록 확고하게 지속된다면, 파트너가 내 시야 밖에서 다른 사람과 밥을 먹든 깊은 관계를 가지든 그것은 내 행복의 근간을 뒤흔들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내 파트너가 물리적으로 나만을 바라보느냐가 아니라, '내가 지금 이 사람 덕분에 외롭지 않고 충만함을 느끼는가' 하는 실질적인 감각이다. 타인을 내 곁에 묶어두려는 얄팍한 소유욕만 내려놓는다면, 우리는 외도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공포와 맹목적인 질투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음지의 기만에서 양지의 합의로: 오픈 릴레이션십과 폴리아모리의 제안
이제 우리는 음습한 거짓말의 굴레를 끊어내고, 더 성숙하고 투명한 형태의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몰래 바람을 피우며 파트너의 가슴에 지울 수 없는 흉터를 남길 바에야, 처음부터 서로의 본성을 인정하고 합의된 자유를 누리는 오픈 릴레이션십이나 폴리아모리(다자간 연애)로 과감히 전환할 것을 제안한다.
오픈 릴레이션십은 두 사람의 굳건한 애착을 중심에 둔 채 육체적이거나 가벼운 만남의 문을 열어두는 것이며, 폴리아모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수의 사람과 동시에 깊고 진지한 사랑에 빠지는 것을 투명하게 허용한다. 이 대안적 관계들의 핵심은 방종이나 무책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어떤 전통적 관계보다도 지독하리만치 엄격한 '정직성'과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한다. 다른 누군가에게 끌리는 마음을 숨기지 않고 파트너 앞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용기, 질투와 불안을 외면하지 않고 끝없는 대화로 조율해 나가는 치열한 과정이 필수적이다.
기만으로 얼룩진 불륜은 상대를 갉아먹지만, 투명하게 합의된 다자간의 사랑은 누구도 속이지 않은 채 관계의 파이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한 사람에게서 완벽한 충족을 구해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감을 내려놓고, 각자가 채워줄 수 있는 다정함의 조각들을 모아 완벽한 퍼즐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다.
소유를 포기할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사랑
스레드와 커뮤니티를 달구는 수많은 파혼과 이별의 사연들은, 역설적으로 '독점적 소유'를 전제로 한 모노가미 시스템이 얼마나 자주 실패하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상대를 소유하려 들기 때문에 속이고, 속기 때문에 모든 것이 파괴된다.
이제는 사랑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당신이 1대1의 배타적 관계 안에서 끊임없이 다른 곳으로 눈이 돌아간다면, 비겁하게 파트너를 속이며 불륜과 바람의 진흙탕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마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몰래 훔쳐 먹는 짜릿함이 아니라, 당신의 다중적인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개방적인 삶이다. 반대로 파트너의 외도에 치를 떨며 이별을 결심한 사람이라면, 스스로에게 솔직하게 물어보라. 당신이 분노한 것은 곁에 있는 파트너의 실질적인 다정함이 결여되어서인가, 아니면 그저 내 소유물에 대한 독점권이 깨졌기 때문인가?
관계를 통제하려는 에너지를 거두고, 나에게 다가오는 실질적인 애정의 밀도에 집중해 보자. 거짓말이라는 썩은 뿌리를 도려내고, 그 자리에 투명한 합의와 쿨한 자유를 심어보자. 누군가를 온전히 소유하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다정할 수 있고, 결코 외롭지 않을 수 있다. 음지에서 서로를 기만하며 상처 입히는 불륜의 시대를 끝내고, 솔직함과 존중이 바탕이 된 진화된 사랑의 형태를 당당하게 맞이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