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얼굴값’이라는 폭력: 어느 소개팅 사연으로 본 대한민국의 씁쓸한 자화상
최근 소셜 미디어 스레드에 올라온 짧은 사연 하나가 실소와 함께 깊은 탄식을 자아내고 있다. 사연의 전말은 이렇다. 글쓴이는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이 자신이 원하던 안정적인 직업군이 아니었음에도, 뛰어난 외모에 끌려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문제는 같이 영화를 본 직후에 발생했다. 영화에 다소 선정적인 장면이 나오자 남성은 대뜸 모텔에 가자고 요구했고, 여성이 이를 거절하자 자신이 몰던 차에서 당장 내리라며 길바닥에 여성을 버려두고 떠났다. 결국 여성은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와야 했다.
이 황당하고 헛웃음 나오는 에피소드는 단순한 ‘진상’의 사연으로 치부하고 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짧은 사연 안에는 현재 대한민국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외모지상주의(Lookism)’의 가장 노골적이고 폭력적인 민낯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길가에 내버려진 존중과 맹목적인 후광효과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양측 모두에게서 외모가 가진 기형적인 영향력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여성의 입장을 보자. 그녀는 애초에 자신이 배우자나 연인의 조건으로 삼았던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중요한 가치관을 상대의 ‘잘생긴 외모’ 앞에서 너무나 쉽게 유보해 버렸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후광효과(Halo Effect)다. 시각적인 매력이 압도적일 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성격, 도덕성, 심지어 경제적 무능력함까지도 긍정적으로 포장하거나 눈감아주는 경향이 있다.
반면 남성의 행동은 외모가 사회적 자본을 넘어 어떻게 폭력적인 권력으로 변모하는지를 정확히 보여준다. 두 번째 만남에 모텔에 가자고 요구하고, 거절당하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상대를 길거리에 버려두고 떠난 행동의 기저에는 얄팍하고 오만한 자신감이 깔려 있다. “너 아니어도 이 얼굴이면 다른 여자를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다. 그에게 여성은 감정을 교류하고 존중해야 할 인격체가 아니라, 자신의 우월한 외모라는 재화를 지불하고 취할 수 있는 일회성 소비재에 불과했다.
외모라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인간관계의 상품화
우리는 흔히 “얼굴값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쓴다. 뛰어난 외모를 가진 이들은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기를 원하고, 때로는 다소 무례하거나 이기적인 행동을 해도 그 외모 덕분에 쉽게 용인받는 사회적 분위기를 빗댄 말이다. 그러나 이 사연 속 남성의 행동은 ‘얼굴값’의 선을 넘어선 명백한 폭력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외모지상주의는 단순히 ‘예쁘고 잘생긴 것을 선호하는’ 미적 취향의 문제를 넘어섰다. 취업 시장에서 이력서의 사진이 당락을 좌우하고, 미디어는 끊임없이 비현실적인 외모의 아이돌과 연예인들을 전시하며 대중의 시각적 기준을 상향 평준화시킨다. 연애 예능 프로그램들은 출연자들의 직업이나 가치관보다 첫인상, 즉 ‘외모’로 철저히 계급이 나뉘는 모습을 오락거리로 소비한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외모는 곧 스펙이자 권력이 된다. 그리고 권력화된 외모는 인간관계를 철저히 거래와 교환의 영역으로 전락시킨다. 사연 속 남성이 분노한 지점도 결국 ‘자신의 외모라는 훌륭한 가치를 제공했는데, 상대가 그에 상응하는 대가(성적 요구 수용)를 치르지 않았다’는 비뚤어진 보상 심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인간과 인간이 만나 서로의 내면을 알아가고 교감해야 할 과정이, 외모라는 화폐를 매개로 한 천박한 거래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껍데기만 남은 사회를 향한 경고
외모가 권력이 된 사회에서 도덕성, 배려, 책임감, 인류애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들은 설 자리를 잃는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오직 외적인 우월감과 타인에 대한 도구화뿐이다. 사연 속 여성이 1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느꼈을 모멸감과 분노는, 단지 매너 없는 한 남자를 만난 불운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외모라는 껍데기에 눈이 멀어 상식과 존중이라는 기본 전제를 간과했던 스스로에 대한 뼈아픈 자각이기도 했을 것이다.
이 웃지 못할 촌극은 우리 사회를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경고장이다. 외모지상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우리는 타인을 한 명의 온전한 우주로 대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외모가 능력이자 면죄부’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제든 길바닥에 내버려지는 사연 속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인간관계의 기반이 얄팍한 시각적 자극에만 머무르는 한, 그 관계는 차 문이 닫히는 순간 언제든 파탄 날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이기 때문이다.
진짜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잘생긴 외모는 눈을 즐겁게 할지언정, 삶을 의지하고 함께 걸어갈 수 있는 영혼의 깊이를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껍데기에만 집착하며 내면의 빈곤을 감추는 사회, 이것이 우리가 그토록 비웃고 분노하면서도 은연중에 동조하고 있는 대한민국 외모지상주의의 서글픈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