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외도라는 허상: 우리는 왜 본질을 외면한 채 '소유'에 목숨을 거는가
현대 사회에서 '외도'는 관계를 파탄 내는 가장 치명적인 죄악이자, 이혼과 이별의 가장 정당한 사유로 꼽힌다. 배우자나 연인이 다른 사람과 감정을 나누거나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이 발각되는 순간, 그동안 쌓아온 모든 신뢰와 헌신은 휴지조각이 된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배신감에 치를 떨며, 뒤도 돌아보지 않고 관계의 종말을 선언한다. 세상은 이들의 이별을 위로하고 외도를 저지른 자에게 돌을 던진다. 하지만 이 거대한 사회적 분노와 이별의 촌극 앞에서, 우리는 관계의 진짜 본질에 대해 아주 불편하고도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과연 상대의 '외도'가 내가 누리던 모든 행복을 송두리째 내던져버릴 만큼 내 삶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었는가? 아니면 우리는 단지 '나만의 소유물'이어야 할 상대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팔았다는 얄팍한 소유욕의 훼손 때문에, 내 손에 쥐어진 99%의 안락함을 스스로 박살 내는 어리석은 자해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유라는 환상, 그리고 껍데기뿐인 정절
우리가 누군가와 연인이 되거나 결혼을 할 때, 그것을 상대방의 신체와 감정에 대한 '독점적 소유권'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착각하는 데서 모든 비극은 시작된다. 사람들은 내 파트너가 오직 나하고만 밥을 먹고, 나하고만 사랑을 속삭이며, 나하고만 잠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 배타적 독점이 지켜질 때만 관계가 안전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라. 바람 한 번 피우지 않고 철저하게 정조를 지키지만, 정작 배우자에게는 한없이 무심하고 폭언을 일삼으며 경제적·정서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 파트너가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외도'라는 선을 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떳떳함을 주장한다. 반대로, 밖에서는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잠자리를 가질지언정, 내 곁에 있을 때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다정하고, 아낌없는 경제적 지원을 하며, 나의 외로움과 결핍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파트너가 있다.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은 기꺼이 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위선을 범한다. 실질적인 애정과 보살핌이 결여된 채 숨 막히는 외로움 속에 방치되더라도, 그저 내 파트너가 다른 사람과 뒹굴지 않았다는 껍데기뿐인 정절에 안도하며 불행한 관계를 유지한다. 반면 후자의 경우, 나에게 쏟아진 모든 헌신과 다정함, 물심양면의 지원을 '기만'으로 매도하며 관계를 깨버린다. 이는 철저하게 앞뒤가 뒤바뀐 논리다. 관계의 목적이 '나의 외로움 해소와 행복'이라면, 나를 실제로 웃게 하고 충족시켜 주는 후자의 파트너가 백번 낫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맹목적인 '독점욕'에 눈이 멀어 실질적인 행복을 발로 차버리는 어리석은 선택을 반복하고 있다.
1%의 결벽증이 99%의 행복을 파괴하는 촌극
외도로 인해 이별이나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그 기저에는 일종의 '관계적 결벽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파트너가 내게 주었던 수많은 위로, 함께 쌓아온 경제적 기반, 다정했던 시간들, 심지어 아이들과 함께 이룬 안정적인 가정이라는 99%의 거대한 가치를, 단 1%에 불과한 '타인와의 성적 접촉' 혹은 '잠깐의 감정적 외도' 때문에 모조리 불태워버린다.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다고 해서 그가 나에게 매달 송금하던 생활비가 사라지는가? 그가 나를 향해 지어주던 다정한 미소가 거짓이 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인간의 감정과 에너지는 유한한 파이가 아니다. 그가 다른 누군가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나를 향한 애정과 책임감을 반드시 훼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나를 두고 다른 사람과 잘 수 있느냐"며 오열한다. 이는 상대가 나에게 얼마나 잘해주었느냐의 실질적 가치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 것인 줄 알았던 장난감을 남이 만졌다'는 원초적인 에고(Ego)의 스크래치에 불과하다. 그 알량한 자존심과 소유욕 하나를 지키기 위해, 그동안 구축해 온 삶의 안정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진흙탕 같은 이혼 소송과 이별의 고통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은 지독한 감정적 낭비다.
육체적 독점권이 사랑의 척도라는 착각
특히 연인이나 배우자가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에 발작적으로 반응하며 헤어짐을 고하는 태도는, 성(性)에 대한 과도한 신비주의와 육체적 독점권을 사랑의 유일한 척도로 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에서 기인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다양한 자극과 새로운 만남을 원할 수 있는 존재다. 상대가 다른 이의 육체에 매력을 느끼고 하룻밤 혹은 그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곧 나와의 정신적 연대나 삶의 동반자로서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섹스를 사랑과 완벽하게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한다. 내 파트너의 성기가 다른 사람을 향했다는 물리적 사실 하나에 꽂혀, 그가 나와 나누었던 정신적 교감과 일상의 다정함을 모두 부정해 버린다. 파트너가 밖에서 육체적 쾌락을 즐기고 돌아와 나에게 더 큰 활력과 애정으로 보답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관계의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 상대의 육체를 내 통제 아래 두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라고 믿는 것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인격체가 아닌 '독점 계약이 체결된 사유 재산'으로 취급하는 폭력적인 태도다. 당신은 파트너의 몸을 소유하기 위해 연애를 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삶을 외롭지 않게 채워줄 동반자를 원하는가? 본질은 육체의 향방이 아니라, 나를 향한 애정의 온기다.
'정상성'이라는 종교에 세뇌된 비극적인 자해
우리가 이토록 외도에 분노하고 가차 없이 이별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내 자신의 실질적인 고통 때문이라기보다 사회가 주입한 '정상성'의 프레임 때문이다. 1대1 모노가미(일부일처제) 사회는 끊임없이 우리를 세뇌한다. "바람피운 사람과는 당장 헤어지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는 일이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한다", "외도를 눈감아주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주변의 시선과 미디어의 부추김은 외도를 당한 사람을 '불쌍한 피해자'로 만들고, 이별을 '당당한 주권 회복'으로 포장한다.
이러한 사회적 압박 속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진짜 감정을 들여다보는 데 실패한다. 파트너가 바람을 피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 사람이 곁에 있기를 원하고, 그가 주는 물질적 혜택과 다정함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바보 취급'을 받을까 두려워 억지로 이별을 고한다. 남들의 시선에 맞춰 자신의 진짜 욕구(결핍의 해소)를 외면한 채, 사회가 요구하는 도덕적 잣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비극적인 자해를 저지르는 것이다.
누군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가졌더라도 나에게 돌아와 충분한 애정을 쏟아주고 내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준다면, 주변에서 아무리 손가락질을 하든 그것은 나에게 '이득'이 되는 훌륭한 관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시선과 획일화된 도덕관념에 휘둘려 기어코 관계를 끝장내고 혼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행복이 아니라 사회적 체면을 위해 살아가는 꼭두각시와 다를 바 없다.
관계의 본질은 '독점'이 아니라 '충족'이다
연애와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은 단 하나다. 차가운 세상 속에서 나를 지지해 줄 내 편을 만들고, 일상의 외로움을 덜어내어 정서적·물질적 '충족감'을 얻는 것이다. 상대를 내 곁에 묶어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배타적인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은 목적을 잃어버린 수단에 불과하다.
당신의 파트너가 다른 누군가와 웃고 떠들거나 깊은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당신의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진짜 세상이 무너지는 순간은, 곁에 있는 파트너가 당신을 투명 인간 취급하고 당신의 외로움을 철저히 방치할 때다. 밖에서 무슨 짓을 하든 내게 와서 아낌없는 사랑을 속삭이고, 나를 위해 지갑을 열며, 내 불안을 잠재워주는 다정함이 있다면 그것으로 관계의 소임은 다한 것이다.
외도를 이유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이별을 결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로 파트너의 그 행동 때문에 '실질적인 불행'을 겪었는가, 아니면 단지 '내 것'을 남과 공유할 수 없다는 비대한 에고 때문에 분노하는 것인가? 소유욕을 버리고 실질적인 충족감에 집중하라. 타인의 신체와 감정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한 환상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비로소 외도라는 허상에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의 굳건한 평온함과 진짜 행복을 쟁취할 수 있을 것이다. 껍데기뿐인 정절에 목숨을 거는 대신, 당신의 일상을 따뜻하게 채워주는 실질적인 다정함의 가치를 다시 한번 똑똑히 저울질해 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