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시사초점] 나는 유산이 ‘자동 삭제’인 줄 알았다 ㅋㅋㅋ
얼마 전 내가 알고 지내는 분이 한동안 일을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유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잠깐 멈칫했다.
그리고 문득 내가 그동안 ‘유산’이라는 것을 얼마나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사실 나는 유산을 거의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임신했는데 몸이 알아서 아기를 삭제하는 것.”
정말 컴퓨터 파일 삭제하듯이 말이다. ㅋㅋㅋ
임신을 했는데 뭔가 문제가 생기면,
“아, 이건 정상적으로 진행이 안 되겠네.”
하고 몸이 알아서 판단한 다음,
삭제 → 초기화 → 평소 상태로 복귀.
나는 진짜 이런 느낌으로 생각했다.
심지어 임신한 지 몇 개월이 됐는데도 배가 별로 나오지 않고 평소와 똑같아서 병원에 가봤더니 임신이 자연스럽게 없어져 있었다…
뭐 이런 식의 상황도 있을 수 있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한마디로 ‘몸속에서 아기가 녹아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처럼 생각했던 것이다. ㅋㅋㅋㅋ
그러다 보니 유산에 대한 나의 가치관도 상당히 단순했다.
임신을 원했던 사람이 유산하면?
“아이고… 얼마나 슬플까.”
반대로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유산하면?
“오히려 다행 아닌가?”
심지어 낙태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수술도 안 하고 자연스럽게 없어졌으니 축하할 일 아닌가?’
라고까지 생각했다.
내 머릿속에서는 거의 이랬다.
원치 않는 임신 + 자연유산 = 평화적인 해결 + 축하 🎉
“Congratulations~!”
하고 축하해줘도 되는 줄 알았다. ㅋㅋㅋㅋ
그런데 이번에 실제로 주변에서 유산으로 일을 쉬는 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조금 더 알아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유산은 그냥 ‘아기가 녹아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자연유산도 출혈이나 복통이 발생할 수 있고, 임신 조직이 배출되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조직이 자궁 안에 남아 의료적인 처치가 필요할 수도 있다.
또 아주 초기의 임신이라면 생리와 비슷하게 지나가서 임신 사실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유산이 아무런 증상 없이 깔끔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임신이 중단됐는데도 바로 배출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제야 알았다.
아… 인간의 몸은 컴퓨터가 아니구나.
Ctrl+Z도 없고,
Delete 버튼도 없고,
휴지통 비우기도 없다.
ㅋㅋㅋㅋ
그리고 또 하나 생각하게 됐다.
나는 유산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었지만, 정작 유산이 실제로 어떤 과정인지 제대로 알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임신은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임신이 중단되면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자연유산과 낙태는 어떻게 다른지,
유산이 발생했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지,
이런 기본적인 내용은 제대로 배운 기억이 없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생기는 것 아닐까?
‘유산’이라는 단어만 알고,
그 과정은 상상으로 채워버리는 것.
나는 그 상상을 너무 멀리까지 가져갔다.
유산을 거의 ‘임신 자동 삭제 기능’이라고 생각했으니까. ㅋㅋㅋㅋ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임신을 원했던 사람에게 유산은 단순히 ‘임신이 없어졌다’는 문제가 아니라 상당히 큰 상실이 될 수 있고,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도 유산이 반드시 ‘축하할 일’인 것은 아니다.
사람마다 상황도 다르고, 몸의 반응도 다르고, 그 경험을 받아들이는 감정도 다르다.
결국 중요한 건 내가 모르는 것을 내가 아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다른 사람의 임신이나 유산처럼 아주 개인적인 문제라면 더더욱 그렇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 이런 사실을 몰랐다면,
임신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이 자연유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어? 축하해요! Congratulations~!”
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ㅋㅋㅋㅋ
그래서 이번 일을 계기로 내 머릿속에 있던 유산의 정의를 업데이트했다.
기존 버전
유산 = 임신 자동 삭제 기능
업데이트 버전
유산 = 임신이 중단되는 의학적 사건이며, 그 과정과 경험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사람의 몸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 중에도,
막상 설명해보라고 하면 ‘대충 상상으로 알고 있는 것’이 꽤 많다.
나에게는 이번 일이 그걸 깨닫게 해준 계기였다.
그리고 이제 확실히 알겠다.
유산은 ‘증발’이 아니다.
그리고…
유산 축하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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