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 칼럼] "아버지는 언제 죽나요?" 어느 씁쓸한 질문과 소통의 부재
글 : 이건호 (금융전략 사령관, IIC / IRC 창시자)
방금 전 네이버 지식인에서 참으로 황당하고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질문 하나를 목격했다.
"우리 아부지 언제 돌아 가시나요? 사망 보험금 많이 타 먹어야 해요... 빨리빨리... ㅠ.ㅠ"
앞뒤 문맥은 다 잘려 나간 채, 오직 아버지가 빨리 죽기만을 바라는 이 극단적인 텍스트. 대중들은 즉각 분노했다. "장난이라도 이런 글은 쓰지 마라", "나중에 피눈물 흘리며 후회할 거다"라며 도덕적 훈계와 돌팔매질이 쏟아졌다. 누군가의 눈에는 그저 짐승만도 못한 패륜아의 헛소리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사령관의 차가운 시선으로 이 글의 행간을 읽으며, 분노보다는 먹먹하고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질문은 결코 철없는 장난이 아니다. 이것은 감당할 수 없는 현실에 짓눌려 괴물이 되어버린 누군가의 '처절한 비명'이다.
1. 텍스트 이면에 숨겨진 '말 못 할 지옥'
상식적인 인간이 왜 혈육의 죽음을, 그것도 '사망보험금'이라는 돈과 엮어서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을까? 그 이면에는 타인이 함부로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생지옥이 숨어있을 확률이 높다.
매일같이 집안을 때려 부수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의 폭력, 혹은 가족의 숨통을 조이는 막대한 빚더미.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고통 속에서 가족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경제적 탈출구가 아버지 목에 걸린 '사망보험금' 하나뿐이라면? 보피아(보험사)들이 '숭고한 가족사랑'이라며 팔아치운 종신보험이, 역설적이게도 누군가의 죽음만을 간절히 기도하게 만드는 잔혹한 '저주의 덫'으로 변질된 것이다.
2. 씁쓸한 아쉬움: 왜 '상황'을 털어놓지 못했을까
내가 이 질문자를 보며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그의 텅 빈 지갑이 아니라, 세상과 단절되어 버린 '처참한 소통 방식'이었다.
만약 그가 "아버지는 언제 죽나요?"라는 자극적인 비명 대신, 자신이 처한 끔찍한 상황과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면 어땠을까?
"아버지가 매일 술에 취해 폭력을 휘두르고 빚만 늘어납니다. 하루하루 죽고 싶은 지옥인데, 제가 기댈 수 있는 건 아버지의 사망보험금밖에 안 보입니다. 저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이렇게 자신의 아픔과 고립된 처지를 세상에 꺼내놓았다면, 사람들은 돌을 던지는 대신 함께 분노하고 위로했을 것이다. 가정폭력 상담소를 연결해 주거나, 파산 면책 제도를 알려주며 "죽음을 기다리지 말고 살길을 찾자"며 따뜻한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절망에 눈이 멀어 극단적인 텍스트 뒤로 숨어버렸고, 스스로를 구제 불능의 악당으로 만들어 세상의 위로받을 기회조차 날려버렸다.
3. 누군가의 죽음이 아닌, '살아있는 자본'으로 탈출하라
나는 이 비극적인 해프닝을 통해 40만 앵무새(설계사)들과 대중들에게 다시 한번 선언한다.
종신보험을 누군가 죽어야만 나오는 '사망보험금(유한 보장)'의 프레임으로 가둬두지 마라. 그것은 돈 때문에 가족이 서로를 혐오하고 죽음을 기다리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가장 흉악한 괴물이다.
우리가 진정 통제해야 할 것은 죽음 뒤에 나오는 위로금이 아니라, 내가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 내 삶의 지옥을 부수고 탈출할 수 있는 '살아있는 자본(환급금)'이다.
그래서 나는 단기납 종신을 무기로 쓴다. 짧게 납입의 고통을 끝내고 10년 뒤 원금을 초과해 팽창하는 거대한 현찰을 쥐는 것. 그것이야말로 보피아의 금고를 터는 기술을 넘어, 극단적인 절망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유일한 구원책이다.
돈 때문에 괴물이 되지 마라. 혼자만의 지옥에 갇혀 누군가의 죽음을 저주할 시간에, 당신의 아픔을 세상에 말하고 자본을 통제할 셈법을 배워라. 사령관의 셈법은 당신이 살아서 현찰을 쥐고 당당하게 삶을 개척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사망보험금의비극 #소통의부재 #말못할사연 #가족사랑의위선 #보피아의덫 #팩트폭격 #금융전략사령관 #이건호사령관 #환급금방어전략 #자본통제력 #살아있는자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