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칼럼] 거름부터 ‘허풍’인 보험농사, 썰려나간 설계사의 의욕을 묻는다
: GA 리크루팅의 배신과 ‘불완전판매’라는 괴물의 탄생에 대하여
글 | 이건호 (보험설계사 · 국가공인 안마사)
북한 드라마 <백학벌의 새봄> 제2부, 34분 6초에서 35분 8초로 이어지는 짧은 시퀀스는 오늘날 대한민국 보험업계의 가장 치부인 ‘불신과 타락의 메커니즘’을 소름 끼치도록 정확히 관통한다. 새로 부임한 리당비서 형섭의 멱살을 잡듯 던지는 노파의 일갈은 드라마 속 농촌이 아니라, 설계사를 소모품으로 부리는 GA(법인보험대리점) 시장을 향한 사효(死孝) 같은 경고장이다.
1. ‘알곡’을 약속하고 ‘환수’의 덫을 놓는 리크루팅의 허풍
GA 리크루팅 시장은 ‘허풍의 성찬’이다. “업계 최고 수수료율”, “무한 DB”, “억대 정착지원금”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는 드라마 속 간부들이 농민들에게 “계획량만 채우면 나머지는 다 네 것”이라고 기만하던 모습과 판박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면 실상은 냉혹하다. 공통비와 운영비라는 명목으로 설계사의 ‘알곡’을 갉아먹고, 정착지원금이라는 이름으로 설계사를 옭아맨다. 실적 기준을 단 1%라도 채우지 못하면, 어제의 동료는 무자비한 ‘환수’의 칼날을 휘두르며 “토로 바치라”고 압박한다. 지원금이 아니라 설계사를 파멸로 이끄는 ‘독이 든 성배’다. 아래로는 설계사를 속이고 위로는 원수사를 기만하는 이 거대한 ‘허풍의 시스템’ 속에서 정직한 사람 농사는 설 자리를 잃는다.
2. “의욕을 싹 썰어버리는” 배신감이 낳은 불완전판매 (35:08)
가장 뼈아픈 지점은 35분 8초, 할머니의 절규다. “이렇게 몇 번 속고 나면 농장원들의 의욕을 그냥 싹 썰어버리고 말지!” 정직하게 땀 흘려도 시스템이 배신할 때, 설계사의 직업적 자부심은 단칼에 베여나간다. “고객을 위해 정직하게 설계해봐야 나만 손해”라는 체념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의욕이 썰려나간 자리에는 냉소주의라는 잡초가 자란다. “농사를 잘 지어도 그만, 못 지어도 그만”이라는 마음가짐은 결국 고객의 미래를 외면하고 나에게 수당이 많이 떨어지는 상품만 밀어붙이는 ‘불완전판매’라는 괴물을 탄생시킨다. 시스템의 배신이 설계사를 ‘허풍의 주역’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
3. 거름부터 허풍인 땅에는 결코 ‘새봄’이 오지 않는다
리당비서 형섭과 노파는 탄식한다. “농촌의 허풍은 거름부터 허풍이다. 기력이 다 빠진 논밭에 비료 한 줌 주면서 농사를 지으니 알곡이 나오겠는가.” 지금 우리 업계의 ‘거름’은 무엇인가? 제대로 된 교육이나 장기적인 철학 대신, 오직 단기 실적을 위한 ‘수당 높은 상품’이라는 비료뿐이다. 내 주머니 챙길 ‘거름(수당)’은 철저히 계산하면서, 고객의 미래를 위한 ‘거름(보장 분석)’은 대충 허풍으로 때우는 현실. 근본인 거름부터 허풍이니, 그 위에 어떤 명품 상품을 심어도 제대로 된 결실이 맺힐 리 만무하다. 토양(시장 신뢰)은 산성화되어 죽어가고, 그 위에는 오직 조롱의 잡초만 무성할 뿐이다.
맺으며: ‘면도칼’을 버리고 ‘뼈심’으로 답해야 할 때
드라마 속 백학리가 황금 물결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리당비서가 할머니의 호통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스스로 ‘낙제생’임을 인정하며 직접 돼지우리를 치웠기 때문이다.
보험업계의 리더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설계사를 당신의 실적을 채워줄 ‘숫자’로 보고 있는가, 아니면 함께 사람 농사를 지을 ‘동료’로 보고 있는가? 설계사의 의욕을 썰어버리는 시스템 위에서 쌓아 올린 실적은 모래성일 뿐이다. 숫자의 허풍을 걷어내지 않으면 우리에게 진정한 풍년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나는 오늘 결심한다. 화려한 수수료 허풍 대신, 고객의 삶에 뼈를 묻는 ‘진심의 뼈심’을 택하겠다고. 비웃음을 사더라도 정직한 땀방울로 이 척박한 보험의 논밭을 일구겠다고 말이다. 썰려나간 동료들의 의욕을 다시 살려내고, 정직한 설계사가 존중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이 백학벌 같은 보험 시장에 뼈를 묻으려는 유일한 이유다.
허풍의 거름으로는 절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 이제는 정직한 땀방울로 보험의 ‘새봄’을 준비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