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설계사들이 왜 보험료를 대신 납부하고, 작성계약을 하고, 고객에게 거짓말을 할까? 그들이 본래 악한 사람들이어서가 아니다. 보험사의 실적제가 그들을 악마로 만들기 때문이다.
실적제라는 이름의 고문틀
보험사들의 실적제는 겉보기에는 ‘성과 관리’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설계사들을 옥죄는 고문 도구에 가깝다.
컷오프식의 잔혹함
“이번 달에 10건을 못 채우면 수수료율이 50%에서 20%로 떨어진다.”
상상해보라. 9건을 달성한 설계사가 마지막 1건을 위해 얼마나 절망적이 될지를. 아이 학원비를 낼 수 없고, 대출 이자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인가?
바로 자기 돈으로 보험료를 대납하거나, 가족 명의로 억지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다.
구간식의 교묘함
“5건까지는 건당 10만원, 10건까지는 15만원, 15건 이상은 20만원.”
언뜻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 악마적이다. 4건을 달성한 설계사는 고작 40만원밖에 받을 수 없다. 생계를 위해서는 반드시 5건을 채워야 한다.
그래서 설계사들은 마지막 1건을 위해 무리수를 둔다. 필요 없는 보험을 권하거나, 보험료를 대납하면서까지 계약을 따내려 한다.
순환식의 지옥
월말, 분기말마다 반복되는 실적 압박. 이번 달에 간신히 목표를 달성해도, 다음 달에는 또다시 제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적되지 않는 성과, 리셋되는 실적. 이는 설계사들을 영원한 다람쥐 쳇바퀴에 가둔다.
승급식의 절망
등급이 올라가기는 어렵지만 떨어지기는 쉽다. 한 번 하락하면 다시 올라가기까지는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작년까지 VIP였는데 올해 실적이 나빠져서 일반등급이 됐어요. 수수료율이 절반으로 줄었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설계사들이 장기적 관점을 가질 수 있을까? 당장의 실적을 위해 단기적 편법을 쓸 수밖에 없다.
압박이 낳는 불법의 나비효과
실적 압박은 단순히 설계사 개인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회 전체에 해악을 퍼뜨린다.
보험료 대납의 악순환
목표 달성을 위해 자기 돈으로 보험료를 대납한 설계사. 처음엔 ‘이번 달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음 달에도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
결국 수천만원의 빚을 지게 되고, 이를 메우기 위해 더 큰 불법을 저지른다. 작성계약, 서류 위조까지 이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불완전판매의 온상
“일단 가입시켜놓고 나중에 설명하지 뭐.”
실적에 쫓긴 설계사들은 고객에게 충분한 설명 없이 계약을 체결한다. 보험료는 얼마인지, 보장 내용은 무엇인지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일단 서명부터 받는다.
이렇게 불완전판매된 보험은 나중에 분쟁의 씨앗이 된다.
승환계약의 피해
기존 계약을 해지하고 새 상품에 가입시키는 승환계약. 고객에게는 손해지만 설계사에게는 새로운 실적이 된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설계사들에게 승환계약은 달콤한 유혹이다. 기존 고객을 상대로 ‘더 좋은 상품이 나왔다’며 갈아타기를 권한다.
시스템이 사람을 바꾼다
설계사들도 처음부터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고객을 도와주고 싶어서 이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실적제라는 악마적 시스템 앞에서 그들의 선의는 무력해진다. 생존을 위해서는 고객을 속이거나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구조에 놓인다.
“고객을 위해 일하고 싶지만, 일단 살아남아야 고객도 도울 수 있지 않나요?”
이런 자기합리화를 하며 점점 늪에 빠져든다.
보험사는 책임을 회피한다
실적제의 압박으로 불법이 발생하면 보험사는 어떻게 반응할까?
“그건 설계사 개인의 일탈이다. 우리는 그런 행위를 용인하지 않는다.”
교묘하다. 실적 압박은 가하면서도, 그로 인한 부작용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린다.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도덕적 해이로 포장하는 것이다.
해결책은 명확하다
실적제를 폐지하거나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최소한의 생계는 보장하되, 추가 성과는 인센티브로 주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생존의 두려움이 사라져야 윤리적 판단이 가능하다.
장기 평가 체계
월별, 분기별 단기 실적이 아니라 연간, 다년간 고객 만족도와 계약 유지율을 기준으로 평가해야 한다.
위촉제 폐지
근본적으로는 위촉제 자체를 폐지하고, 설계사를 독립 전문가로 만들어야 한다. 특정 회사의 실적 압박에서 벗어나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결론: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개별 설계사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다. 악마적 시스템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드는 구조를 방치해두고서는 진정한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보험업계와 금융당국이 실적제의 폐해를 직시하고 근본적 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만 설계사도, 소비자도, 보험산업도 모두 상생할 수 있다.
더 이상 설계사들을 악마로 만드는 시스템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